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까맣게 몰랐을 얘기들도, 미주알고주알, 들립니다. 듣다 보면, ‘저런 얘기는 몰라도 되는데’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어쩌다가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저들끼리 지껄인 얘기도 있지만, 저들 기분 내키는 대로, 각종 매체를 통해 스스로 내뱉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같은 얘기인데,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에 따라 해석을 다르게 한다는 점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한 번 내뱉은 얘기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아차!’ 싶은 주위 사람들이, 그림에 덧칠하듯, 수작들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앞뒤 문맥을 보시면, 그런 뜻이 아녔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더 가관은, “마음이 상하신 분이 계신다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투의 사과입니다. 오해는 누가하고, 이해는 또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엊그제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2900억 원 정도를 배상하라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에 따른다면, 론스타의 변호사 비용과 이자까지 포함하여, 실제로 5000억 원쯤 세금으로 갚아야 한답니다. 이 일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주요 언론은 전하는 보도 내용부터 국민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론스타’가 6조 2600억 원쯤 요구했는데, 2900억 원 정도로 낮아졌으니, 한국 정부가 ‘이겼다.’라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한 푼 안 줘도 되는 돈을 주게 됐으니 ‘졌다.’라는 주장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심상치 않은 것은 현 윤석열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현 한덕수 국무총리는 론스타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 고문이었고, 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현 기재부) 은행제도 과장이었다고 합니다.
‘론스타 사건’은 10년을 끌었답니다. 내용을 보면 속 터지는 것이 한 두어 가지가 아닙니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는지가 중요한 데, 산업자본이 확실하면, 외환은행을 살 수도 없었고, 이번 재판을 시작할 자격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 논란이 한창인 2008년 현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금융위 부위원장이었고, 추 부총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되판 2012년에 금융위 부위원장이었답니다. 시시콜콜한 얘기 같지만,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는 국민은 속이 터지고 답답합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흔히 쓰는 ‘와중(渦中)’은 사실 함부로 쓸 말이 못 됩니다. 원래의 뜻이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라는 의미의 심각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가 또한 가관이었습니다. 우리 정부의 승소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덕택이라며 낯 뜨거운 예찬과 칭송을 버젓이 올렸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윤석렬 후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칭찬했다고, 특히 호남 사람에게, 호되게 비난을 받았었습니다. 전체적인 문맥을 보면, “전두환 대통령은 잘못한 것도 많지만, 특히 경제 분야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을 등용하여 맡겼던 것은 좋았었다.”라는, 대충 말하면 그런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런 점은 저도 개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갖었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호남 사람들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칭찬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윤석렬 후보는, 사과는 했었어도, 내심 상당히 억울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때는 그랬었는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윤석렬 대통령의 생각은, 지금까지 교육부 장관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대로 임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아주 다르게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과 가까운 사람만 찾고 있는 것 같아서 대단히 아쉽습니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모두가 그렇다 보니 나름대로 사는 모양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자기와 다르게 산다고, 이상하다고 느끼기는 할지언정, 흉을 볼 일이 아닙니다. ‘다름’과 ‘반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예를 들어, 내가 주장하는 ‘남쪽’ 아니면 모두 ‘북쪽’으로 알기 쉽습니다. 우리는 조금의 차이를 두고 거의 같은 방향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나와 뜻이 같지 않으면 나의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지식한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독재를 부립니다. 나와 생각하는 것이 다르면 모두 척결 대상이고 적이요 원수로 여깁니다. 기본적인 소양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옳다고 여겼던 것들도 상황이 바뀌면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합니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했습니다.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 쓰이는 그릇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그릇이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책력 한 권 놓고 살 때가 있었습니다. 24절기, 언제 계절이 바뀌고 씨를 뿌려야 하는지, 거의 그것만 알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살았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누가 무슨 벼슬을 하든지 대부분 사람에게는 그다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다가도,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벼슬을 달고, 밥값을 하느라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따로 없구나!’ 하며, 스스로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요즈음 감사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주 입줄에 오르내립니다. 음식 얘기로 빗대어 말씀드리자면, 주방장도 헷갈리기가 십상이게 됐습니다. 소금인지 설탕인지를 모르는 주방장은 없고, 설탕을 쳤는지 소금을 쳤는지 모르는 손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무리 ‘저들 멋에 산다.’라고 하지만, ‘소금인 줄 알았더니, 설탕이었네!’라는 말을 들어서야 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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