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새 옷을 입은 기분이 듭니다. 새벽이면 서서히 밝아오는 빛이 은은합니다. 점점 윤곽이 드러나는 모습들이 멀고 가까움에 따라 원근감이 드러납니다. 엷은 안개에 싸인 앞산들은 자못 신비스러워 보이고, 뜰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왠지 친밀감이 더 느껴집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좀 더 소박하게 살아야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 봅니다. 귀가 엷어서 남의 말에 너무 휩쓸리지나 않았었는지, 경박스러운 제 모습의 순간순간이 떠오릅니다. 나이 마흔하나에 ‘늦었지만 아주 늦지는 않았다며’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던 도연명이 부러워집니다. 저는 이제 늦어도 한참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해보고 싶어집니다. 물고기가 자기가 놀던 연못을 그리워하고, 날기에 지친 새가 쉴 나무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어떻게 하면 제 분수대로 더 소박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싶습니다.
사람이 소박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을 여러 가지의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남들이 말을 하면 말을 끝까지 듣고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 같습니다. 상대방의 뜻이 본인과는 다를지라도 끝까지 잘 듣고, 이해하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까 헤이스께(1931- )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히로나까는 필즈상을 받은 세계적인 수학자입니다. 필즈상은 세계 수학자들 가운데 선정하여 4년마다 주기 때문에 매년 주는 노벨상보다 더 권위가 있습니다. 그 분이 그 책에서 ‘소심심고(素心深考)’ 얘기를 했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슨 내용을 이해하는데 ‘선입관념’이 없어야 되고, 어떤 운동이든 억지로 힘을 쓰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옛날 사람들이 목화를 심고 실을 뽑아서 옷감을 짜던 일을 생각해 봅니다. 씨아로 목화에서 씨를 뺀 다음, 목화솜 속에 활의 시위를 넣고 튕겨서 솜털을 부풀렸습니다. 솜이 부풀면 보프라기 몇 가닥을 모아서 물레를 이용하여 회전하여 꼬아서 일정한 굵기의 실을 만들었습니다. 베틀을 설치하고 힘겹게 짠 옷감이지만 색깔이 누렇고 질감이 거칠어서 오랜 시간을 햇볕에 널어 바래거나 양잿물로 표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깨끗한 바탕의 옷감을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짐작이 되십니까. 바탕 마음이 깨끗한 무명옷감과 비슷하다는 느낌의 ‘소심(素心)’을 지닌다는 것도 옷감을 표백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동안 푸성귀를 소금물에 담가서 풋내를 빼내듯이, 우리들의 어설프고 경박스러운 바탕을 어떻게 하면 소박하고 원숙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바꾸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동 쌍계사에 가면 신라시대 최치원이 비문을 쓴 ‘진감선사비’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훌륭한 스님이 돌아가시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문장가가 비문을 썼답니다. 당시 제일의 문장가였던 최치원은 여러 스님들의 비문을 남겼습니다. 진감선사비문은 마모가 심하고 특히 6-25전쟁 때 손상이 심하여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많습니다. 다행히 쌍계사에서 목판본으로 새겨둔 것이 남아있어서 내용이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산 이지관(1932-2012) 스님은 역대 고승의 비문을 번역하시고 해설을 붙여 출판하셨습니다. 비문들을 보면 스님들의 당시 삶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스님들은, 어찌 보면 스토리가 상투적일 정도로, 조실부모한 분들이 많고, 최치원 처럼, 당나라에 가서 공부 했습니다. 최치원이 가야산에 숨어든 때가 42세였답니다. 도연명이 낙향했던 나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그 분들이 왜 낙향을 했었던지, 문득 궁금해지곤 합니다.
조선시대 청장관 이덕무(1741-1793)가 서른다섯에 쓴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士小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때 승려였던, 소설가 김성동(1947- )이 번역하고 편집한 것인데, ‘어린이의 예절(童規), 여성의 예절(婦儀), 선비의 예절(士典)’로 나뉘어졌습니다. 호인 ‘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한 종류로서 눈앞에 다가오는 먹이만을 먹고 사는 청렴한 새 이름이라고 합니다. 서문을 보면, “나는 빈천한 선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기록한 말에는 빈천에 대한 예절이 많다. 현인들이 남긴 교훈을 잠언으로 갖추고, 근래 사람들의 일을 적어서 보고 느끼게 했다. 풍속을 바로잡고 남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정의 법칙을 삼기 위해서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영조–정조 이후 조선의 도덕 교과서로서 널리 읽혔다고 합니다. 선조들이 얼마나 자기관리에 힘을 썼었는지, 한 구절 한 구절 읽다보면, 절절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금년에도 나라 안팎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많게 생겼습니다. 벌써부터 4월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롭게 선거법이 바뀌었고, 날만 새면, 각 정파들이 별별 해괴한 수 싸움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들 반 정도는 교체되었으면 싶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되어, 중국에서는 진즉에 ‘하방(下放)’이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만, 낙향하여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도 배우고,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치원이 가야산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연명이 어떻게 전원생활을 즐겼었는지는 소상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대의민주주의, 즉 간접민주주의, 남의 권리를 위탁 받아서 머슴 노릇 시키는 제도라고 하지만,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설치는 꼴들이 황당하지 않습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쌀에 섞인 뉘들을 모두 골라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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