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춘포
박 복진입니다
누구보다도 개를 싫어했던 제가,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개보다도 못한 상식으로 개를 끌고 다니던 개 주인들을 싫어했던 제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개를,
더 정확한 표현으로 우리 집에서 내가 기르는 내 개를,
지독하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과 마라톤 신발 창고를
이곳 양평 외딴 곳 외딴 독립가옥으로 이전해서
개와 내가 단 둘이 생활하기 시작한지가 이제 일 년이 다 돼갑니다.
내 개는 아무런 재주가 없어 보입니다.
낯 설거나 이상한 사람을 처음 보아도 짖을 줄 모릅니다
무조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자진해서 친밀감을 보입니다.
멀리 동네 개들이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다 쳐들어와 자기 밥그릇을 에워싸고
통채로 다 먹어치워도 뭐가 그리 흐뭇한지 멀건히 바라만 보고 있으며
그 중에 잘 생긴 암컷 한 마리라도 있을라치면 그 넘 꽁무니 따라다니느랴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비워버린 자기 밥그릇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일의 경중, 사물의 앞 뒤 순서를 귀신같이 파악하고 있지요.
남을 보고 짖을 줄 모르니
우리 집은 하루 종일 가도 개 짖는 소리는 하나도 안 납니다.
누가 보면 성대 수술을 해서 못 짖게 만든 줄 압니다
그러니 내 개는 야간에 외부 침입자를 보면 짖어서 주인에게 이를 알려야 할 제일
기본적인 의무도 못하고 있는, 즉 제 밥값을 못하는 개입니다.
주인과 주인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커녕,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합니다
이번 달 초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집 뒤 야산에서 내려온 멧돼지가 동네 밭들을 훼집고 다니자
동네분들이 포수와 사냥개 네 마리를 데려와 풀어서 하루 종일 멧돼지 사냥에 나섰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종일 헛탕치고 내려온 사냥개들이 화풀이로 내 개를 덮쳐
뒷다리와 허벅지, 꼬리 등을 사정없이 물고 늘어졌습니다.
개의 비명소리에 놀랜 내가 신을 신을 사이도 없이 맨발로 마당으로 뛰쳐나가
이 개들을 작대기로 후려쳐서 쫓지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즉시 내 개를 차에 태우고
양평 동물병원으로 줄달음질쳐서 제 때 치료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내 개는 앉은 자리에서 대소변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잘 생긴 내 개는
동네에 산책차 마실을 나가면 동네 꼬마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옵니다
짖지 않죠, 순하고 물러터져 사납지 않죠, 누구나에게 꼬리를 흔들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구나가 공감하는, 아주 미끈하게 잘 생긴
정통 시베리아 산 말라뮤트죠.
다만 한가지 흠으라면
먹는 것은 우라지게 많이 먹는다는 것인데
이거야 뭐 어쩌겠습니까, 태생이 그렇다면 헐 수 없지요
먹는 게 많으니 고형물질 배설도 우라지게 크고 많습니다
고형물의 굵기가 꼭, 항문 확장 시술자의 그것 같다니까요
외딴 독립가옥에서 나랑 단 둘이 살고 있는 나의 이 개,
개의 이름은 파-비입니다.
제가 생산해서 공급하고 있는 faab 마라톤 신발의 faabie 입니다,
즉 하늘을 나는 새의 자유 정신을 가진 free as a bird 의 faab 의 faabie 입니다
이제 나랑 faabie 는 정이 너무나도 깊이 들어
단 하루도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달리기 나갈 때 나랑 faabie 는 꼭 붙어다닙니다
어쩌다 서울 나들이를 할 때도 제 차 뒤 트렁크에 태우고 다닙니다
이렇게 나랑 정이 깊이 든 내 개,
나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내 개와 같은 종을 길렀던 어느 분의 말씀을 듣고나서부터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개는 천성적으로 그렇게 순해서
개도둑들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가자고하며 끌고가면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저한테 하루 삼시 세 끼 먹을 것 주는 주인에게 단 한마디 미련도 없이
그냥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따라가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 지 개 지가 끌고 가나보다 ! 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나는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내 생활에 이 개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우선
아침마다 내 개랑 10 여 km 씩 뛰어댕기는 재미가,
주말에는 20 여 km 씩 뛰어댕기는 재미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개가 없을 때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다녔지요
그러나 지금은 개랑 같이 뛰어다니는 재미가,
이제는 뗄레야 뗄 수 가 없게되었습니다
faabie 는 나와 다른 종의 동물이 아니라
나의 진정한 달리기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시베리아에서 눈썰매를 끈다는 faabie 의 조상을 닮아서
적어도 달리기에 관한 한 faabie 는 아무런 흠이 없기 때문입니다
쇠철망을 해서
내가 외출 할 때는 그 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라는 충고도 있었으나
멀쩡한 동물을 쇠창살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운다는 것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외출을 할 땐 이웃 집에 맡겨놓으라고 했으나
나같이 독립가옥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맡길 이웃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끝에
이번 주 초 서울 나들이 때 모처에 들려
스티커를 하나 장만해 왔습니다
내 개를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 스티커인데
내용은 경고가 아니고 도둑에게 드리는 간절한 호소문이었습니다
내 개의 실상을 알리는 자세한 설명문이었습니다
제가 장만해온 스티커는,
그 날 서울 집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내에게 보여줬다가
” 아이고, 쬐끔식 좀 웃겨, 여보 ! ”
라고 들었던 그 스티커의 문귀는 이렇습니다.
+++++
이 개가 탐나십니까?
이 개는 짖을 줄도 모르고
주인도 잘 섬길 줄 모르고
남을 웃기는 재주도 없으며
밥은 우라지게 많이 먹지만
고기 맛은 전혀 아니올시다
라고 합니다
그냥 가시는 게 좋습니다
주인 백
++++++
춘포
박 복진

한 집에 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이 닮아간다고 합니다. 개는 주인을 닮고, 주인은 개를 닮는답니다. 날이 갈 수록 점점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탕은 겨울에 맛이고, 고기맛이라니요, 무슨 아마추어 같이, 양념맛이지요. 천하의 돈환들이 어디 미인들만 찾습디까. 똑 같은 얘기이고 원리입니다.
주인께서 전북 춘포 출신이신가요?
하루에 10여 km를 달리신다니 부럽기만 합니다.
말라뮤트 아니라도 개는 사람보다 더 잘 달립니다만,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개는 어떤 더 훌륭한 놈으로도 대치될 수 없겠죠.
주인의 정성을 안다면, 개도둑도 개를 고기로만 보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고기맛이 별로란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네요. 자기가 잡아먹을 개를 훔치는 개도둑이 몇이나 되겠습니다. 그저 몇 푼의 돈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개의 목줄에 몇 푼의 돈을 매달아 놓고 돈이 필요하면 이것을 가져가라 해보십시오. 아마 개도둑은 크게 감동하여 돈과 개를 한꺼번에 횡재한 것을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향이 익산군 춘포면 용연리 판문(늘문이)이고, 그러니까 저하고는 죽마고우입니다. 기차놀이한다고 골목도 누볐고, 처마밑에 제비집을 부숴 죽도록 혼도 났습니다. 그리고 박교수님의 고등학교 2년 선배됩니다. 대장역에서 기차통학했지요.
친애하는 보석연꽃님, 오늘 우연히 위 글을 수정하려고 들어왔다가 님의 덧글을 봉견했습니다. 네 장교수의 설명데로 춘포가 고향입니다. 수구초심인가 나이가 망육에 접어드니 왠지 고향이 자꾸… 소인의 호가 원래는 포춘이었는데 ( 고향 이름을 따고 싶으나 고향에 기여한 바가 없어 거꾸로라도 고향과 연관을 지어보려고 ) 한반도 종단, 횡단 울트라 마라톤을 하니 친구들이 그 정도면 고향 이름을 빛낼만하다, 지금부터는 옳게 춘포라고 해도 되겠다 해서 춘포가 되었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