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성탄절의 추억

안녕하십니까.

춘포
박복진입니다.

내 유소년 시절의 아련한 추억입니다.

하얀 눈이 초가집 지붕마다 소복소복 쌓이고, 처마 끝에 녹다 만 고드름이 주렁주렁,
변변한 난방 장치가 있을 리 없는 꽁꽁 언 동지섣달 시골 집 문고리는 손에 쩍쩍 달라
붙었습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차려서 들고 들어오시는 밥상 위에서 얼음이 서걱서걱한
동치미 국사발이 위태위태하게 미끄럼, 찌끄럼을 탔습니다.

검정색 물들인 광목 윗도리로는 턱없이 부족한 방한 기능 때문에 양지 바른 곳 찾아
남향 볏짚  울타리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던 또래 애들이 갑자기 흐트러졌습니다.
동네 형들이 면 소재지의 예배당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일이 주 예수가 오셨다는
성탄절인데 이따가 거기가면 과자하고 떡을 나눠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예배당에
안 갔던, 갔던 그냥 오면 죄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돌고, 과자 나눠주는 사람이 날 알아보고 한 개 더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구멍 뚫린 바지 봉창에 고사리 손가락을 모아 그 구멍을 막아보기도
했습니다.

빨갛게 언 손잔등으로 연신 코를 훔쳐내며 형들 따라 긴 눈구덩 신작로를 걸어 예배당에
갔습니다. 듬성듬성 벌거벗은 가로수 사이로 매서운 눈보라 북풍이 휘몰아치면 목은
자라목이 되고 검정 고무신 속 발가락은 오그라들어 발톱이 살 속을 파고 들 정도였습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예배당입니다.
입구에서 고무신을 벗어 신발장에 놓고, 맨발로 마루판을 걸어 들어가 긴 나무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봅니다. 집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울긋불긋 색종이 장식의 예배당 천정, 그리고 좌에서 우로 반원을 그린 마름모 형태의
큰 글자들, 축 성탄,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리고 뭔지는 모르지만 가슴 찡하니 날 별천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는 낮은 음의 경건한 성탄 찬송 풍금소리…

예배가 끝나고, 동방박사가 등장하는 연극도 끝나고, 잠자리 주머니채가 사람들 앞을 지나
가는 마지막 헌금 순서도 끝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과자 나눠주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뒤에서부터 사람들이 나가면서 과자를 받기 시작하자 내 조그만 가슴은 콩당거리기 시작
합니다. 다 주고 없어서 난 못 받을 수도 있을까 봐 나는 소년의 애처로운 조바심입니다.

사탕.
내 유소년 시절 이것만큼 달콤한 유혹은 없었습니다. 어쩌다 찾아오시는 친척 손님들
보따리에서 나온 알록달록 왕방울 눈깔사탕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사탕을 내 고사리 두 손 가득히 누군가가 담아주었습니다.
손을 오므리면 적게 받고, 벌리면 가운데 벌린 틈으로 쏟아지는,  아 정말로
안타까운 내 욕심과 고사리 손바닥 넓이의 함수 관계여!!!
먹고 싶은 달콤함을 소유한 지금의 내 끝 모를 만족감이여, 불룩한 꺼멍 광목 윗도리
주머니 봉창을 바라보는 내 작은 두 눈 속 포만감이여…..
이제 어서 가서 이 눈깔사탕을 우리 집 안방의 벽장 안 구석, 나만 아는 사발에 감춰
두고 맨날, 맨날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함지막만하게 벌어진 입에서 연신 나던 헤헤 소리가 끊긴 건 불과 몇 걸음,
예배당 입구 신발장 앞 까지였습니다. 누가 내 고무신을 가져 가 버렸습니다.
내가 신어야 할 내 신이 없어졌습니다. 발목까지 쌓인 눈, 밤이 되어 꽁꽁 언 5리 신작로를
걸어가야 할 나에게 신발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황당해서 울지도 못했습니다.

처연한 가슴을 안고 맨발로 예배당 문을 나섰습니다.
내 소유, 얼마 신지도 않았던 만월표 검정 고무신을 잃었다는 엄청난 현실에 나는 얼이
반쯤 나갔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가다가 동네 형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형들의 등에
번갈아 업혀 신작로,  나머지 길을 왔습니다.

늦은 겨울밤이지만 쌓인 눈으로 어둠은 내몰려 맥을 못 췄던,
주 예수 탄생 성탄 하루 전 날의 푸르스름했던 밤하늘, 꽁꽁 얼어 미동도 안하던 별들,
그러면서도 주머니 속의 불룩한 눈깔사탕이 주던 만족감.

색종이 글자 그 자체가 주었던 기쁘다 구주 오셨네. 축 성탄의 신비함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박제된 서양말로 바뀌어져버린 오늘에도
나는 내 아련한 유소년 시절 성탄 전야 빛바랜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버리질 못하고,
매 해 이맘때면  자꾸만, 자꾸만 꺼내보곤 합니다.

춘포
박 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

This Post Has One Comment

  1. 박천배

    누가 양심도 없이 그 고무신을 가져갔을까요? 신발을 가져가는 것 만큼 난감한 일이 없지요. 저도 이 글을 읽으니 잊었던 기억하나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하교하려 하는데 신발이 없더군요. 그 조그만 발에 선생님의 슬리퍼… 까만 타이어 오려만든 … 슬리퍼를 신고 집에 오는데, 죽고싶을 만큼 창피하더군요.  발에 맞지도 않아서 걷기도 힘들었던기억… 오랜만에 다시 회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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