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시를 몇 편씩 받습니다. 일정한 시간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처럼 그렇게 시 몇 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시인이 많다는 말인가!’라며 놀랍니다. 옛날에는 좋은 시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월간잡지 뒤쪽에 실린 좋은 시를 발견하면 반가웠습니다. 유종호(충주 1935- ) 선생님이 중학교 다니실 때 “서정주(고창 1915- 2000) 시인의 ‘풀리는 한강가에서’라는 시를 잡지(신천지 1948년 3월호)’에서 보고 외웠다.” 하셨는데, 얼추 계산해보니, 13살 때였습니다. 그 시를 쓰셨던 미당 선생님은 32살이었고요. 13살짜리 중학생이 서점에서 시를 통째로 외웠다는 것이나 ‘화사집(1941 남만서고)’을 미당이 불과 27살 때 냈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든, 저에게 시를 보내주시는 분이 고마워서 여쭈어봤더니 ‘매일 30분쯤 시를 찾으며 즐기고 있지요.’ 했습니다. 참 고마운 분입니다.
나이가 들면 친구들이랄지 가까운 친지를 만나면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이 더 들게 됩니다. 아주 옛날에는 제가 좋아하는 한국 가곡을 선별하여 카세트테이프에 담아주곤 했는데, 요즘엔 주로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아마 가장 많이 손에 들고 나가는 책은 박경리(통영 1926-2008) 선생님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일 것입니다. 김영주 외동 따님이 39편의 시를 엮었는데, 부록으로 사진첩도 있고, 한 마디로 시로 쓴 박경리 선생님의 자서전입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았고, 무엇보다 문장이 평이하고 솔직하다가 보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선물하기 좋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여분을 꽤 여러 권 갖고 있는데, 인터넷 헌책방에서 40권 가까이 구했습니다. 지금은 구하기가 좀 어려운 편이 됐지만, 박용래(강경 1925-1980) 시인의 시전집 ‘먼 바다’도 꽤 여러 권 헌책방에서 사서 나눠 가졌습니다.
시인의 단행본 시집은 간혹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인별로 ‘시 전집’은 될 수 있으면 갖고 있으려 합니다. 어떤 시인의 ‘시 전집’을 갖고 있다고 그 시들을 다 읽어보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신석초 오장환 한성기 김상옥 박재삼 조오현 조운 김기림 김현승 박목월 조지훈 조벽암 서정주 등등. 짐작이 가십니까? 바로 얼마 전에는 고려대학교에 계시는 고형진 교수가 ‘박용래 평전’ ‘박용래 시전집’ 두 권을 출간했다기에 곧바로 주문했습니다. 박용래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새로 나온 평전과 시 전집에 본적과 4남 2녀의 다섯째로 태어났다는 얘기와 현대시학에 연재했던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 등의 산문이 실렸었습니다. 박용래 시인의 시전집 ‘먼 바다’에는 부록으로 딸린 이문구(보령 1941- 2003) 선생님이 쓴 ‘박용래 약전’이 기가 막히게 감칠맛이 나고 재미가 있습니다.
저는 자주 ‘대학교 입학시험에 본고사가 부활하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문과 시詩 때문입니다. 웬만큼 한자를 알아야 우리말의 뜻을 더 잘 알 수가 있고, 청소년 시기부터 많은 시를 읽어야 품격이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인터넷 시대에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지식에 대한 욕구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정치인들, 얼마나 교양과 상식이 모자란 사람들이 많습니까. 본인이 어떤 점이 부족하다면 두려워하고 조심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저 자리에 앉아,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망신을 하나 측은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아름다움에 예찬과 감탄 없이는 예술을 즐길 수 없습니다. 마음 편안하게 음악을 듣고 시를 즐기는 것이 예술 자체를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고은 시인께서 모처럼 책을 두 권 내셨다기에 인터넷 주문을 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바로 도착했을 책이 며칠이 지나서 늦게 도착했습니다. 시집 ‘무의 노래’와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입니다. 2012년에는 김형수 선생님과의 대담집인 ‘두 세기의 달빛’과 1970년대 중반 일기를 묶은 ‘바람의 사상’을 내셨는데, 제가 별도로 주문하여 통독한 바가 있습니다. 제가 재직하던 군산대학교에는 여러 번 특강을 오셨고, 직접 뵙고 말씀을 여러 번 듣기도 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시집을 먼저 봤습니다. 저는 머리말과 해설을 먼저 봅니다. 고려대학교에 오래 계셨던 김우창(함평 1937- ) 교수님께서 해설을 쓰셨는데, 시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시와 해설을 교대로 읽으면서, ‘그런 뜻이 있었나!’하고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마치 시경詩經을 읽는 듯했고, 검은 색 감지紺紙에 금니金泥로 그린 고려 불화를 보는 듯 황홀했습니다.
얼마 전에 고하 최승범(1931- 2023.1.13)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고은 선생님을 만나면 으레 최승범 선생님 안부를 물으셨고, 고하 선생님은 고은 선생님 소식을 궁금해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척하느라고 두 분께 ‘가람문선(1966 신구문화사)’ 얘기를 꺼내곤 했습니다. 두 분이 함께 편집하셨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람 선생님께서 ‘개도 사람보다 나을 때가 있다.’ 뭐 그런 붓글씨 쓰시는 사진 있지요?”하면 ‘아, 그래. 그런 사진 있었지!’ 하며 반기셨습니다. 고하 선생님께서는 국문학자이기도 하셨지만, 전라도 문화에도 관심이 크셔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연재를 오래 하셨고, 단행본으로도 여러 권 출간하셨습니다. 어느 허름한 식당에 가셔서도 타박을 안 하셨고, ‘최선’이 나오도록 이끄는 듯 보이셨습니다. 구례역 건너편, 섬진강 강변도로는 벚꽃 명소입니다. 묘소가 거기 섬진강로 60번지랍니다. 언제 꽃철에 들려봅시다.
을하
*시사전북 2023년 2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