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어져서 전주천 새벽시장에 자주 다니고 있습니다. 미나리야 사시사철 나오고 있는 채소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봄철 미나리가 제일 연하고 맛이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나리의 값이 여간해서 내려가지를 않고 있습니다. 머위와 취나물도 며칠 전부터 새벽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물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들입니다. 비닐하우스가 아닌 밭이나 노지에서 채취한 머위와 취나물은 조금 더 있어야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머위를 쌈을 싸서 먹을까 싶어서, 머위를 살 수 있는 최소 단위인, 5천 원 값어치를 샀습니다. 머위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씻어서 갓 지은 밥에 고추장을 발라서 쌈을 싸 먹으니 쌉쌀한 향기가 입안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면서, “아하, 이것이 바로 봄의 향기로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머위를 몇 끼를 먹고 나서, 취나물을 사서 쌈을 싸서 먹으니, 그것도 별미였습니다.
쑥도 진즉부터 나왔는데, 그릇에 담아놓은 양이, 물어볼 것 없이 5천 원일 텐데, 너무 적어서 아직 살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사방에 쑥일 텐데, 조금만 기다려 보기로 한 것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니까, 여수 앞바다에 있는 거문도에서 쑥이 제일 먼저 나오고, ‘진도군 조도면’에서도 쑥을 대규모로 재배한다고 했습니다. 봄철이면 ‘도다리쑥국’이라고 말들을 하기에 마산을 지나가면서 시장에 들러서,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때 맛을 봤었습니다. 국이 약간 짭짤했었고 먹을 만은 했었지만, 도다리와 쑥의 양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꼭 도다리가 아니더라도 봄철에 나오는 ‘흰살생선’이면 나름대로 모두 맛이 좋을 것입니다. 아무 때나 군산 해망동의 어판장에 가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생선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내변산 쪽을 갈 때면 가끔 부안에 들려보는데 거기도 비교적 생선이 쌌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상수도 시설이 많이 갖춰지지 않아서, 동네마다 공동 우물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는, 바가지로 물을 퍼서 쓸 수가 있는, 소위 ‘박쩍샘(바가지 샘)’이 있었고, 대개는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대부분 깊은 우물이 많았습니다. 부잣집에는 대개 울안에 별도 우물이 있었고, 도르래를 달아서 두레박 줄을 잡아당겨서 물을 긷도록 했습니다. 우물이 있는 곳에는 버려서 흘러가는 물을 잡아두는 조그만 습지가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 미나리를 심기도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꽃 필 때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나리꽃은 늦여름에 피는데 정초에 가야 할 세배를 7월이나 8월에 간다는 얘기는 처갓집을 경시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미나리가 질겨지게 됩니다. 그때쯤이면 가격도 싸져서 웬만한 식당이나 주막에서도 미나리를 푹 데쳐서 반찬이나 술안주로 나오곤 합니다.
봄철 채소는 단맛이 납니다. 저의 고향 ‘익산 춘포’에서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지만, 냉이를 ‘나숭개’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냉이와 나숭개가 다른가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둘은 똑같은 것이고, 지역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투리가 있었습니다. 냉이의 사투리가 몇 개나 있을 것이라 짐작하시겠습니까? 제가 찾아본 사이트에서만 물경 122가지가 나와 있었습니다. 그 냉이도 뿌리를 잘 보고 사야 합니다. 너무 잔뿌리가 많으면 나물을 다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쑥국이나 냉이국을 끓일 때는 김장김치를 씻어서 쫑쫑 썰어서 넣어야 맛있습니다. 약간 신맛이 나야, 쑥이든 냉이든, 향기가 상승작용으로 더 강해지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쑥을 한자로 ‘애(艾)’라고 하니까, 쑥국은 한문으로 ‘애탕(艾湯)’이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부터 얼마나 쑥을 좋아했으면 단군신화에, 마늘과 함께, 쑥이 등장하겠습니까.
봄나물의 제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두릅일 것입니다. 혹자는 두릅 순보다도 엄나무 순이 더 맛있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씁쓸한 엄나무 순이 향긋하기만 한 두릅과 비교를 하는지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마치 송이버섯보다도 능이버섯이 더 낫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찌 송이와 능이를 비교하고, 주유와 제갈량을 또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말이 나온김에, ‘일고수 이명창’이나 비슷한 주장입니다. 생전에 박동진 명창이 우진문화공간에서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말씀이 “‘일고수 이명창’은 소리를 할 때, 북을 딱 먼저 한 번 치고 시작하거든, 그래서 북을 먼저 한 번 딱 친다고 해서, ‘일고수 이명창’이제!”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제랄드 무어(Gerald Moore 1899-1987)가 피아노 반주를 잘한다고 해도, 어찌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Fisher-Dieskau 1925-2012) 보다 더 낫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봄나물을 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중에 아파서 병원에 가고 약 사 먹는 것보다, 얼마간 비싸더라도 맛있는 나물 사 먹는 것이 낫다.’라는 것입니다. 요즘 봄볕에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쪽파 나물도 별미입니다. 엊그제 체가 짧은 쪽파 한 단을 4천 원을 주고 샀습니다. 어디에서 온 쪽파냐고 물어봤더니 벌교에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봄에 나오는 시금치는 또 어떻습니까. 가끔 잘 보면, 섬에서 나왔다고 해서, ‘섬초’라고 부르는 시금치가 있는데, 살짝 데쳐서 나물 해도 맛이 달콤하고, 된장국을 끓여도 부드럽고 구수합니다. 나물을 뜨거운 물에 데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채소에 들어 있는 씁쓸한 거름기를 빼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물을 혼자 다듬노라면, 시간이 아까운 생각도 들지만, 다른 식구가 있어서 함께 모여서 나물을 다듬노라면 모처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을하
*시사전북 2023년 3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