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으로 삽니다. 그 어려웠던 지금으로부터 두어 세대 전에는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희망과 꿈이 지금의 기성세대를 기르고 교육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바랐었겠지만 자녀들을 기르고 교육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는 삶이었습니다. 자녀들을 교육함으로써 집안도 일으켜주고 자기 생애에는 이룰 수 없는 어떤 염원 같은 것을 이뤄주기 바랬었는지도 모릅니다. 1950년대 60년대, 당시에 교통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고생이었습니다. 통학 거리가 먼 자녀들을 위하여 부모님들은 새벽 4시 전에 일어나셨습니다. 온돌을 쓰던 그 당시에는 도시고 농촌이고 없이 땔감이 부족했습니다. 지금의 할아버지들 학교 다닐 때는 농촌에서는 짚, 도시는 연탄을 땠습니다. 지금의 아버지들 세대는 여건이 좋아졌지만, 교육을 위하여 쏟는 정성과 염원은 전 세대들 못지않았습니다.
저의 고향은 익산군 춘포면 용연리 판문 만경강 강변입니다. 지금도 고향 생각을 하면 가난한 살림에 어떻게 할머님께서 아들 둘 따님 하나를 모두 학교에 보내셨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저의 고향 마을에서 전주와 익산으로 학교에 가려면 ‘대장촌역’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아주 어릴 때 기억입니다만, 숙부님과 고모님께서 아직 결혼하기 전, 전주와 익산으로 학교에 다니셨습니다. 당시 고향에는 전기가 초저녁에만 잠깐 들어왔습니다. 어쩌다 새벽에 캄캄한 어둠 속에 깨어서 들어보면, 부엌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딸그락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웬만큼 커서 걸음마 걸음으로 부엌에 들락거리며 보니까 지푸라기를 때는데 잘 타지 않고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지푸라기가 바싹 말랐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 기억을 더듬다 보면, 할머님 어머님과 함께,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할머님께서 한글을 배우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있습니다. 교재가 얇은 팜플렛 두께였는데, 저의 집에 몇 분 할머님이 모이셔서 “가갸거겨—”하시던 목소리가 제가 거의 갓난아이였을 때였을 텐데, 기억납니다. 우연한 기회에 한하운(1920-1975) 시인의 ‘개구리’라는 시를 읽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 시 가운데 할머님들이 한글을 배우시던 모습이 떠올랐었기 때문입니다. 매우 짧은 시이므로 시 ‘개구리’ 전문을 소개하겠습니다. <<가갸 거겨/고교 구규/그기 가.//라랴 러려/로료 루류/르리 라>>입니다. 문둥병이 옮은 한하운 시인이, 1950년대의 초반, 마을로 차마 못 들어오고, 논둑길을 걸으면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마을에서 들리는, 당시 한창 문맹 퇴치 운동으로, 한글 배우는 소리를 겹친 듯한 발상의 시 같습니다. 무채색 희미한 기억 속 저의 할머님 모습은 필생의 염원이 당신의 자녀교육이 아녔었나 싶습니다.
어느 시대고 교육이 문제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유독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이 엄청나게 긴 것을 두고서 인류학 학자들은 ‘교육 때문’이라 합니다. 지금 우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문화와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을 시키자면 20년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부모들은 모두 자녀보다도 한 세대 약 30년이 더 빠릅니다. 1900년대부터 과학과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변해서 부모 세대가 30년 후의 자녀 세대의 과학과 사회를 예측하고 교육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세계적인 부호의 판도가 계속 급속히 바뀌고 있습니다. 낡은 경험으로 미래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몇십 년 동안에 변하지 않은 우리의 교육체제로 미래세대를 가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공교육에 대한 정책을 단기간에 몇몇 정치인들이 상식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각급학교의 내실화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 9년 동안, 의무교육입니다. 적어도 3년 단위로 끊어서 상급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소학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학력에 미달 되면 낙제를 시켜야 합니다. 상급 학년으로 진급시켜서는 안 됩니다. 중학교부터든, 어느 시점의 학년부터 적성에 따라서 최소학력 시험 과목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고등학교부터는 인문-실업 등등, 분야별로 수학능력을 가진 학생만 다녀야 합니다. 논란이 되는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자체를, 문제은행식을 도입하는 등, 난이도를 대폭 낮춰 ‘고등학교졸업자격고사’로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대학별 학과별 본고사를 허용해야 합니다. 웬만한 대학 영문학과에서 셰익스피어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고사는, 대학과 학과에 따라 안 볼 수도 있고, 몇 과목 볼 수도 있어야 됩니다.
우리 교육에 대한 희망이 사상누각처럼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만큼 불안합니다. 공교육이 각급학교의 학년에 걸맞은 학력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생 살면서 우리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가꿔줄 예체능 분야 교육이 약화되고 초 중등학교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취학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웬만한 대학들은 입학정원에 턱없이 미달 되고 앞으로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대학에서 전공교과목을 이수할 능력이 없는 학생도 모두 졸업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급학교가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보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그렇게 길러질 리 만무합니다. 사회구성원 모두 학생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무료 가까운 개인지도는 꼭 필요합니다. 재능기부라고 있지 않습니까? 교육이 곧 희망입니다. 사회구성원과 학교가 협력하여 학생들의 학력를 높여서 우리 공교육을 살리도록 합시다.
을하
#시사전북 2023년 7월호 게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