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게임의 진화’

 

우리가 어릴 때는 그것들을 놀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예 민속놀이쯤으로 여기게 됐지만, 수많은 놀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글자 찾기 놀이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서 그 만큼 글자를 배우기에 도움이 되는 놀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각각, 땅바닥을 발로 단단하게 다진 다음, 둥글게 구부린 양철조각으로 땅바닥에 글자를 팠습니다. 찾기가 힘들도록 될 수 있으면 획이 복잡한 글자를 골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나 같은 글자들입니다. 파인 바닥을 다시 흙으로 메우고 발로 단단히 다져서 무슨 글자를 썼는지 찾기 어렵도록 했습니다. 숨겨놓은 글자를 서로 찾는 놀이는 친구가 숨겨놓은 글자를 쉽게 찾는 재미도 있고, 내가 숨겨놓은 글자를 친구가 못 찾고 쩔쩔매는 것이 또 그렇게 재미 있었습니다. ‘한글도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느냐구요? . 그 때는 거의 그랬었습니다.

 

고누놀이는 어떠했습니까. 봄이 되면 수로에 물이 철철 흘렀습니다. 멀리 대아리 저수지에서 못자리하라고 흘러 보냈습니다. 수로 곳곳에 왜정시대 때 만들었다는 수문이 있었는데 우리들에게는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목욕을 하다가 시멘트 난간에 말을 타듯 앉아서 고누를 놓았습니다. 토끼풀이나 콩잎을 뭉쳐서 고누판을 그렸고, 신작로에서 작은 조약돌을 주워서 말을 삼았습니다. 나무에도 참나무가 있고, 두릅도 참두릅이 있듯이, 고누에도 참 고누가 있습니다. 호박고누는 유치했고, 자동차고누는 형들의 놀이였습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규칙이 그렇다고 하면 떼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고누는, 지면 지는 것이고, 다시 놓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땅뺏기 놀이도 그랬고, 자치기 놀이도 그랬습니다. 놀이에 지면, ‘x’하면서, 왼손으로 오른쪽 손을 쓰다듬으면서, 오른쪽 손을 번쩍 쳐들었습니다. 참 시원했었습니다.

 

제 외손자 녀석은 지난 2월이 두 돌이었습니다. ‘세살박이입니다. 신통하게도 저녁 9시 무렵 잠이 들면 아침 7시 넘어서 깹니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자다가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리고 울 때가 있습니다. 우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잠결이지만 내꺼야!’라는 말이 섞였습니다.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유아원에서 낮에 장난감 때문에 또래들과 다퉜다는 얘기입니다. 그럴 때는 얼른 그래 단우꺼야. 맞아 네 꺼야.’하면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잠이 듭니다. 그런 손자 녀석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얼마나 놀이에 지고 게임에 지는 것에 적응하고 익숙할 수 있을지 안쓰럽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 같습니다. 어릴 때 또래들 끼리 놀면서 지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 중요한 일임이 새삼스럽습니다. 정해진 규칙을 함께 즐기는 것임을 알아야 할 텐데요.

 

게임이라는 것은 꼭 누구와 경쟁을 해서 지고 이기고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인격체로서 절대적인 의미의 최종적인 가치를 완성한다는 것은 누구와 경쟁을 통한 게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별들이 정연한 질서에 따라 움직이듯이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나름대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들과의 놀이요, 게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남보다 큰 집에 살고, 비싼 옷을 입었다고, 배기량이 더 큰 차를 타고, 또 무슨 직책을 가졌다고 우러러 볼 일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에 최종적인 인생의 목적을 둔다면, 물론,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두고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행복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나름대로 자신을 완성하는데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이 약간씩 들뜨는 것 같습니다. 남을 대신해서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만큼의 소명의식이 있어야 될 텐데, 나르시스적인,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여러 사람을 대신해서 일을 맡게 된다면, 본인에게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의 신체 어느 기관이 제대로 작동을 못한다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어떤 때는 우리의 머리가 되어 줘야 할 사람이 그 역할을 할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거를 게임으로 보고, 온갖 수단을 다 하는 사람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나를 믿어 달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겠습니까. 우리 영화, ‘밀양이라고 있었습니다. 종교인도 그렇지만, 회개를 했다고 깨끗해집니까? 과거에는 설령 어떻지만, 믿어달라고요?

 

우리가 남의 얘기를 할 입장도 못 되지만, 미국이나 일본이나, 국민들이 안쓰럽고, 지도자들이 참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도자들이라고 매뉴얼도 모르는 사람에게 고급 장난감을 맡긴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신뢰를 잃으면 정치를 그만 둬야 합니다. 일본은 한 두 사람의 정치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범들의 후손들이 집단적으로 최면을 거는 듯합니다. 미국은 왜 그렇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장사꾼의 나라임을 떠벌리는지 국민들이 창피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은 완전 폐기되어야 합니다. 볼턴 말대로 모두 미국 테네시로 가져다 폐기하면 좋겠지요. 저 같이 고누나 놓던 사람이 도저히 알 수는 없겠지만, 대륙간 탄도탄과 핵폭탄이 만약 완성 된 상태라면 1기당 F22 랩터 몇 대와 맞바꾸자고 할 수 있을까요? 10대요? 20대요? 그렇게 진화된 게임은 아무도 계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요?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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