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이시대,어디가 아픈것입니까?

          

음식 프로가 많아졌습니다. 토요일 낮 EBS는 집사람 차지입니다. 두어 시간 넘게 요리프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누가 음식 맛이 좋다며 엄지손을 치겨들면 맞장구치기가 계면쩍습니다. 특히 나이가 드신 분이 음식이 참 맛있네.”하시면, “, 별론데요.”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럴 때는 좋은 표현이 있습니다. “, 참 건강하시군요. 입맛이 건강의 척도라는데요.” 그건 사실입니다. 몸이 안 좋으면 음식 맛이 안 납니다. 말기 암 환자들에게 주는 약이 있습니다. 성분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입맛 나는 약입니다. 암 환자들이 얼마나 입맛이 없으면 약을 먹겠습니까. 집 사람이 저에게 핀잔을 줄때가 많습니다. 대개는 때문입니다. 어쩌다 밥상머리에서 칭찬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입맛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반찬투정 않고, 끼니마다, 게 눈 감추듯 하니, 그 것이 참 고마운 모양입니다.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흔 넘어서 부터는, 공통적으로, 치아에 문제가 생깁니다. 눈은 안경을 쓰면 되지만, 더 심각한 질환도 많습니다. 지방간, 고지혈증, 당뇨자동차 부품 수 보다 훨씬 많습니다. 물론, 기능이 더 복잡하니, 더 많아야겠지요. 자동차 부품은 서비스 센터에 가서 교환하면 되는데, 사람은 그게 안 됩니다. 못 걷은 사람에게, 지팡이나 휠체어를 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여자들은 편두통이 많은 것 같습니다. 치통이나 이명,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위로하는 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눈치를 봐 가며, 그럴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큰 병은 아닌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큰 병은 아프지가 않는 답니다.”라는 것입니다. 위로가 될는지 안 될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렇게라도 얘기는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과 실제로 느낀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어떤 경우는 아무리 마음을 담아서 뜻을 전달하려고 해도, 말하는 사람 본인부터가, 그것이 진심인가 미덥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1988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1년간 있었을 때입니다. 어떤 유학생이, 지금은 부경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만,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을 읽어보라며 줬습니다. 청계천 봉제 노동자들의 얘기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민들은 고국을 그리워합니다. TV에서 연일 88올림픽이 떴습니다. 교민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교민들도 ‘1980년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순간, ‘전태일 평전영향이었을까요, 갑자기 광주사태생각이 났습니다. “,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죄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뜻 같았습니다. 그 희생에 대한 슬픔이, 비록 어느 정도뿐이겠지만, 제게 다가왔습니다.

 

세월호사건이 터진지도 2년이 가까워집니다. 20144월이었습니다. 강의 중에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침몰하는 뱃속에서 부모님들께, ‘사랑한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더라고 말하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얘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학생들은 모를 것입니다. 제가 자식을 가진 부모라,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슬퍼한다는 것을. 300명이라는 숫자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연이 가슴을 칩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냅니다. 만약 왕세자가 잘 못하면, 다른 사람의 종아리를 때립니다. 다른 사람의 종아리가 아프면 왕세자의 종아리도 아파야 합니다. 죄 없는 어린 양이 피를 흘리면,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아파야 합니다. 그것이 제사아니겠습니까. 그럽니까? 저들이 눈물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셨습니까? “아니니, 아니다.”라고 해도 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시대가 갖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대의 어디가 아픈 줄을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통증을 못 느끼는 사회’, 그것이 얼마나 큰 중병을 안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자기가 한 집의 호주나 되는 양 여깁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곧 호주를 상속 받은 것쯤으로 착각합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비극입니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우리들이 인간으로서의 갖고 있는 고유의 권한 가운데 극히 일부만 일시적으로 양도한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그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국민들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국민들의 권한을 위임 받으려 했다면 범죄입니다. 정치가들이 국민들을 염려해야지, 어떻게 국민들이 정치가들을 염려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까. 대통령을 비롯해서, 이 시대의 정치가들이 이 시대의 아픔에 대해서 통증을 못 느낀다면, 이 사회는 얼마나 큰 중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까.


선거가 곧 있습니다.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왜 선거 때 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는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누구를 어떻게 알아 볼 수가 있을까요. 음악을 들어 보십시오. 아는 음악이 나오면 제법 박자를 맞춥니다. 전혀 모르는 음악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귀에 들리는 그대로, 빈 배가 물결에 흔들리듯, 그냥 놔둡니다. 내 안에서 멋대로 그림을 그리도록 기다립니다.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어떤 멜로디가 들립니다. 머리 위에서 날던 새가 멀리 날라 갔다가 돌아오더니 다시 머리 위에서 빙빙 도는 것 같습니다. 다시 들으면 새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날개의 깃털까지 다 보이는 듯합니다. ‘주제변주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좋아 하십니까. 우리들이 변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제는 스스로 정할 수가 있습니다. 오로지 선거를 통해서 뿐 입니다. 정치가들의 얼굴을 잘 보면 쓰여 있습니다. 이 시대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의 얼굴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쩐지 어렵다면, 약간 뻔뻔스럽지만, 직접 물어 보십시오. “이 시대, 어디가 아프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을하

 

This Post Has One Comment

  1. editor

    참으로 아픔의 시대를 살고 있군요.

    세월호의 아픔과 슬픔은 언제쯤 아물어지기는 할까요? 중병을 앓고도 그걸 못 느끼는 것이야말로 크나큰 병 아니겠습니까. 가슴으로 뉘우치게 만드는 글, 잘 읽었습니다.   화산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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