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사랑과 재채기는 숨기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나올 듯 말 듯 하다가 “엣 취”하고 터지는 재채기처럼,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감추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림 같은 풍광을 봤을 때나 기막히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경치를 누가 함께 봐줬으면, 저 음악을 그 친구도 들었으면” 하고 우리는 늘 아쉬워하지 않습니까. 사람이란 각자 성향이 달라서 좋고 싫어하는 것이 나와 다른 줄을 알면서도 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함께 즐기기를 바랍니다. 예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 예술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습니까. 예술, 우리 모두 함께 즐길 수는 없겠습니까.
공자님께서는 산을 좋아하시는 ‘알피니스트’였다고도 하고,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하시는 ‘뮤직매니아’였다고 합니다. 제나라에 계시는 동안 순임금님이 만든 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르실 정도로 음악에 몰입하셨다고 합니다.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그 곳에서는 어떤 음악을 즐기십니까.’라고 묻곤 하셨다고 합니다. 음악을 알면 그 지방의 풍속과 삶을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공자님께서 세상에 대해서 얼마나 폭 넓게 알고자 하셨는지, 그 열망이 짐작 됩니다. 공자님께서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수많은 아마추어 예술가와 예술애호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 분입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재능 보다는 애호가 더 훌륭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는 자녀들의 예능교육에 열의가 대단했었던 것 같습니다. 왠만 하면, 월부로라도, 피아노를 들여 놓으셨고, 자녀들을 미술학원에 보내셨습니다. 재봉틀과 피아노는 혼수감으로서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과 같은 보물들이었습니다. 그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 제작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었지요. 그렇게 자란 지금세대의 부모님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예술애호가로 품위 있게 키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장래 무슨 직업을 갖든, 시도 읽고, 음악회나 전람회장도 가고, 가끔 연극도 보러 가면 좋지 않겠습니까. 비 오고 눈 내리는 날 연주회장에 가려면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술과 예술가들은 신이 인간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 예술과 예술가는 가히 꽃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꽃이 없는 정원을 혹시 생각해보셨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아름다움이 그냥 존재해왔던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하나하나 찾아내고 기나긴 창조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우리는 단지 몇 가지 매뉴얼만 익히면 그런 보물들의 주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기계라도 매뉴얼도 읽지 않고 작동 시킬 수는 없습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투자와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허먼 멜빌의 ‘백경’이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그레고리 벡’이 주연으로 나오는 흑백영화도 있었습니다. 소설에 보면 고래고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래가 워낙 커서 부위마다 갖가지 다른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고래 한 마리를 해체 시켜놓고 보면, 부위별로 육지의 온갖 짐승들의 고기 맛이 다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음악으로 말하면 베토벤이 그렇습니다. 덩치가 크고 작품이 다양해서 왠만한 음악의 맛은 다 들어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히 대가이고, ‘악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됩니다. “그 사람의 작품은 나와 취향이 달라”라고 하는 말이 베토벤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고래처럼, 베토벤의 작품들 속에는 별별 성향의 음악들이 거의 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품이 진중한 음악 애호가라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들과 궁합이 아주 잘 맞을 것입니다.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들은 그렇게 ‘징명’할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에센바흐’가 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도 일품들입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어떻습니까. 리카르도의 바이올린과 브르노 까니노의 피아노가 아기자기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합니다. 연습장면을 녹화한 필름을 보면, 같은 이탈리아 사람이라 친해서 그러는지, 주로 까니노가 지휘자처럼 아카르도에게 해석을 해줍니다. 참 보기 좋은 장면입니다.
가을에는 브람스를 들어야 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교향곡들도 그렇지만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가을에 어울립니다. 한 없이 파고드는 바이올린의 느린 멜로디와 무거운 피아노 반주가 스산한 계절과 딱 맞습니다. 클라라 슈만이 죽었을 때, 브람스는 경황 중에 엉뚱한 곳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고 합니다. 유럽의 기찻길은 거미줄과 같이 얽혔습니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면 브람스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그 만큼 브람스의 음악이 나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안내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한국가곡도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우선 성악가들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세대로는 서울사중창단(?)의 멤버, 박노경 이정희 안형일 오현명이 정말로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작곡가 금수현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월간음악’의 주선도 있었지만, 한국가곡의 보급차원에서 전국 순회연주를 자주 하신 분들입니다. 이 고장 출신 송광선 고성현 김남두도 정말 빼어나신 분들입니다. 이정태선생님을 위한 음악회에서 소프라노 송광선의 열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가곡집 ‘눈’은 음색과 녹음 모두 최고였는데, 지금은 절판 되어 구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시도 가끔 읽으면 좋습니다. 신석정 서정주 고은 모두 이 고장 출신들입니다. 은행님이 노랗게 물들면 석정시인의 ‘임께서 부르시면’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강경 출신 박용래시인의 시집 ‘먼 바다’는 요즘 창비에서 재판이 나왔습니다. 박용래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일수록 더 좋아하십니다. 이 가을, 예술 속에 흠뻑 빠지는 호사 누려 보시기 바랍니다.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