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5. 흐지부지& 휘지비지

흔히 새해, 새 학기, 새 달이 되면 새로운 각오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처음에 굳세게 다짐했던 결심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만다. 살을 빼겠다고 다짐한 이, 술이나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한 이, 외국어 회화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이, 저마다 시작은 단단히 벼른다. 그러나 끝은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일이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시작됐는데, 그 결과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 우리는 그 일이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확실하게 끝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기는 모양’이라고 풀이돼 있다. ‘흐지부지’는 부사로도 쓰이지만, ‘흐지부지하다’나 ‘흐지부지되다’란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조선어학회에서 간행한 『큰사전』에는 올림말 ‘흐지부지’에 ‘끝을 마무르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기어 버리는 꼴’이란 풀이가 있다. ‘흐지부지’는 단어의 구조로 보아 ‘흐지’와 ‘부지’로 쪼갤 수 있다. 그렇다면 ‘흐지부지’의 이전 형태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에는 ‘휘지비지(諱之秘之)’가 올림말로 실려 있는데, ‘남을 꺼려서 몰래 얼버무려 넘김’으로 풀이돼 있다. 그리고 ‘휘비(諱秘)’는 ‘휘지비지’의 준말로 설명돼 있다.

결국 ‘흐지부지’는 ‘휘지비지’란 한자어가 그 어원이다. ‘ 감지덕지(感之德之), 애지중지(愛之重之), 역지사지(易之思之), 좌지우지(左之右之) 등의 한자어들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휘지비지’가 단모음화하여 ‘휘지’가 ‘히지’에서 ‘흐지’로, 그리고 ‘비’가 ‘부’로 변화하여 ‘비지’가 ‘부지’로 변모했다.

한자로 풀이하면 ‘휘(諱)’자는 ‘言(말씀 언)’과 ‘韋(가죽 위)’가 결합된 글자이다. 여기서 ‘韋’는 가운데의 ‘口’를 경계로 하여 아래 위의 두 부분이 서로 어긋나 있는 모습으로, 본래의 뜻은 ‘상반되다’, ‘어긋나다’가 된다. 그 후에 ‘부드러운 가죽’을 뜻하기도 하는데 본래 딱딱하고 무거웠던 가죽(皮)의 성질과는 어긋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휘(諱)’는 ‘말을 어긋나게 하는 것’이 된다. 즉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엉뚱하게 피해서 하는 말이다.

본디 ‘휘(諱)’는 ‘꺼리다’, ‘피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조상이나 왕의 이름은 자손이나 백성의 입장에서 함부로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자(字)나 호(號)를 이름 대신 불렀다. 자손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그런 글자를 피했는데 그것 역시 일종의 ‘휘(諱)’ 또는 ‘피휘(避諱)’다.

‘秘’(祕의 俗字)는 ‘示(보일 시)’와 ‘必(반드시 필)’이 결합된 글자다. 여기서 ‘示’는 ‘귀신(鬼神)’ 혹은 ‘조상(祖上)’을 뜻한다. 참고로 ‘示’가 부수인 글자 중에는 귀신과 조상과 관련된 한자가 많다. 예를 들자면 ‘토지의 신’을 뜻하는 ‘사(社)’와 ‘신에게 빌다’는 뜻의 ‘기(祈)’와 같은 한자들이 있다. 결국 ‘비(秘)’는 마치 ‘귀신의 일처럼 으슥하고 은밀해서 도무지 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즈음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 흐지부지됐다는 비판이 드세다. ‘747공약(매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실현)’으로 대표되는 장밋빛 구호는 대부분 실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여파라지만 당초 제시했던 공약은 이제 공약으로서의 가치조차 없어진 상황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시절 매년 일자리 60만개를 만들고 1,2년 내에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경제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며 “1~2년 내에 일자리 문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구호’에 불과하다”고 실토할 정도니 말 다했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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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ahng

    옥스포드영어사전을 보면 각 단어 마다 어원이 나와 있습니다. 풍부한 예문과 함께, 언제 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의미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말사전도 내용을 보완하여, 북한에서 쓰는 말도 포함하고, 우리말에 대한 어원과 전거를 확충해야 겠지요. 길거리에 뿌리는 1회성 문화행사 보다 더욱 절실한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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