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전염병 이야기

포세이돈보다 바커스가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져서 익사한 사람들 수 보다 술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라는 의미를 재치 있게 빗대어 표현한 말 입니다. 중국의 우한이 그 진원지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 독감때문에 우리나라 안 팍, 온 세상이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전쟁과 전염병 가운데 어느 쪽의 희생자가 더 많을까?”라는 으스스한 얘기를 생각해봤습니다. ‘세계화, 전 지구적 통합의 역사(BOUND TOGETHER)’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도 출신 언론인이자 학자인 나얀 찬다 (Nayan Chanda, 1946- )2007년 펴낸 책으로 같은 해에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간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전염병에 의한 희생자가 전쟁에 의한 사상자들 보다 훨씬 더 많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전염병에 의한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참으로 끔직 했습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전염병 확산은 2세기에 로마군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전쟁을 마치고 로마로 귀환하면서 전파되었던 것이랍니다. 페스트인지 천연두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감염자의 3분의1에서 2분의1 가량이 사망하고, 지중해 연안의 인구가 급감하였다고 합니다. 542년에 인도에서 발생한 전염병은 페스트였답니다. 무역선에 의해 홍해를 거쳐서 이집트로 전염되고,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갔는데, 역병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콘스탄티노플에서만 하루 만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인구가 1600만에서 2600만 가량인데, 그 가운데 30%에서 40%가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페스트, 즉 흑사병(black death)는 라틴어 아트라 모르스(atra mors)’를 잘못 번역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트라(atra)’의 뜻 가운데 끔찍하다검다로 선택하여 흑사병(black death)’으로 오역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 기록에 남아있는 전염병 역시 페스트, 흑사병으로서 1331년 중국에서 발생하여, 1345년에는 크림반도, 1347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 전파되었는데, 유럽 전역에는 1347년부터 1722년까지 창궐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의 인구가 80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60%에 해당되는, 5000만 명가량이 페스트와 페스트에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답니다. 그렇게 소수만 남게 된 생존자들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아서 아시아로부터 아랍 상인들에 의하여 유입되는 비단과 향신료 등과 귀금속에 과도하게 빠졌답니다. 금과 은이 부족하게 되어, 한 역사가는, ‘15세기는 금과 은의 기근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1516년에 독일의 요하힘스탈(Joachimstal)이라는 곳에서 큰 은광이 발견되어 요하임스탈러(Joachimstaler)라는 은화까지 주조했답니다. 그 은화를 탈러(Thaler)’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달러(dollar)의 어원이 그 것이랍니다.

 

인류가 식량을 찾아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수렵을 했을 때는 비교적 건강했을 것이랍니다. 그들은 떠도는 삶의 방식 때문에 쓰레기를 쌓아두지도 않았고, 가축이나 가금류를 키우지도 않았답니다. 인류가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 생활을 시작한 뒤 공동체를 형성하여 소와 가금류, 설치동물, 곤충과 밀접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세균들의 매개체가 된 것이랍니다. 또 교역에 의하여 공동체 끼리 왕래가 이뤄지면서 세균과 세균을 보유한 설치류, 모기, 벼룩들을 실어 나르게 되었고, 노예와 전쟁에 의하여 전염병의 확산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검역은 유럽에 페스트가 한창 창궐하고 있었던 1377년 베네치아의 식민지인 라구사(Ragusa, 현재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닉 Dubrovnik)에서 이뤄졌답니다. 페스트 발생지역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40일간 격리를 시켰는데, 오늘날 검역(quarantine)’은 이탈리아어 ‘40’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천연두의 백신은 기원전 1000년에 이미 인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티베트로 전파되고 AD 1000년경에 쓰촨지방 불교 수도승들이 중국에 전했답니다. 17세기에 아라비아,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에 전파됐고, 오스만제국에서는 부족 단위로 백신접종이 이뤄졌답니다. 영국에는 18세기 콘스탄티노플 주재 영국 대사부인이 접종법을 소개했답니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는데, 1798년에 그 접종 절차를 설명하는 글에서 라틴어로 암소를 의미하는 바카(vacca)’에서 백신(vaccin)’종두(vaccinat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합니다. 1881,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1895)’는 제너의 그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백신(vaccin)’의 뜻을 모든 병에 대한 예방접종으로 확대 시키자고 제안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명한 독감 바이러스 학자인 케네디 쇼트리지(Kennedy Shortridge, 1941- )는 세계적인 독감의 발생지를 추적해 들어가면, 인구 밀도가 높고 사람과 돼지, 오리와 기타 가금류들과 오랜 세월 한데 어울려 살아온 중국 광둥성에서 대부분 시작 되는 것으로 믿는다고 했답니다. 우한에서 비롯된 코로나바이러스 독감의 전파양상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어떤 전염병이 됐든 전파속도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습니다. 전염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나 재난보다도 전염병이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백신은 어느 의학적 발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심지어 세계의 인구 분포까지 변화 시킬 만큼 중요합니다. 인류에게는 전쟁도 무섭지만, 그 희생자 수만 놓고 보면, 전염병이 훨씬 더 파괴적입니다. 우리들 생존을 위해서, 백신 개발도 시급하고, 공동체의 공공보건정책에도 우리들이 적극 협조해야만 될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