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시든 꽃’을 주제로 한 변주곡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쳤는지. 어떻게 하면, 편하게 먹고 사는 것 말고,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우리부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지는 안했었는지. 누구는 어찌 돈을 벌었고, 얼마나 높이 출세를 했는지, 부러워하지는 안했었는지. 친구들 앞에서, 자식들 앞에서, 학생들 앞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생각해보면, 무섭습니다. 사람이 먹고 살기만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남보다 꼭 더 큰 집에서, 더 비싼 옷을 입고, 보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만 좋은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그런 욕심을 버리고 살 수 있을 것인지. 힘들고 궂은일은 싫으면서도, 마른자리에서 따뜻한 밥은 먹고 싶은 이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Fe)은 무슨 색깔이지?” 순간 학생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저도 검은 색? 붉은 색?”하는 동안, 친구들도 역시 대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답은 선생님이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흰 색이다. 알았나?” 웃으시면서 알려주시던 그 표정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저희 학교에 초빙되셨는데, 얼굴이 까맣고 체형이 마른 편이셨습니다. 나중에 서울로 전출하셨는데, 서울 여의도 중학교 교장을 하실 때 뵌 적이 있습니다. (Fe)이 하얀색이라는 것은 금방 납득이 갔습니다. 무쇠로 만든 가위가 돌에 떨어져 끊어졌을 때 그 단면이 하얀 것을 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붉은 색을 보면,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시던, 그 화학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엉뚱한 얘기를 할 때면, “저 사람이 왜 저러는가?”하고 한참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뉴스를 보다가도 그럴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 사람의 본심은 무얼까. 말은 저렇게 하더라도, 원래 생각은 그렇지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저 사람이 저 정도 출세했으면 됐지, 왜 저러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의 본심 같지가 않아서 납득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쇠로 만든 가위같이 뚝 끊어져서 속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동물인가?”라고 궁극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제가 이르는 결론은, “저렇게 살아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겠지라는 것입니다. 쿠데타를 일으켰어도, “남는 장사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아부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왜 그렇게 비겁한 짓들을 합니까. 자식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보여줘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10년을 더 살고, 20년을 더 살면 무엇 합니까. 누구는 대놓고 그럽니다. “내가 죽으면 무덤에 침을 뱉어라그 사람이 누굽니까? 쿠데타 주모자 아닙니까. 국민들을 어떻게 보고, 그런 얘기를 합니까. 배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뜻대로 안 되면 총칼 들고 달려들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신 똑 바로 차려야 합니다. 말이라도, 농담이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읽은 펄벅의 대지생각이 납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아편을 줘라. 나머지는 아편이 알아서 할 것이다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권력도 국민에게 대한 사명감 없이는 아편보다 더 독한 마약입니다.

 

음악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 – 1828)32살에 죽었습니다.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형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답니다. 11살에 국가 장학생으로 학생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지휘도 했다니, 놀랄만한 천재입니다. 15살쯤부터 1000곡 가량 작곡을 했는데, 600곡이 21살 전의 작품이랍니다. 특히 18세 된 해의 가을에만 150곡의 가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27– 28살의 작품입니다. 20곡으로 이루어졌는데, 곡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내용은 마이스타 자격을 얻기 위하여 물방앗간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히는 어느 젊은이의 얘기입니다. 저는 노래들 가운데, 아가씨가 젊은이를 사랑하는지 궁금해 하는 물어보는 마음이나, ‘아침 인사’, 특히 물방앗간의 꽃을 좋아 했습니다. 그것이 최고인 줄로 알았습니다.

 

저는, 젊은이가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고, 물방앗간의 꽃을 보면서, 아가씨도 자신을 사랑하는지, 궁금해 하는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누가 봐도, 그 때가 제일 아름답겠지요. 어느 날, 라디오에서 슈베르트가 작곡한 새로운 곡을 들었습니다. 플릇과 피아노를 위한 곡인데, 제목이 <‘시든 꽃을 주제로 한 변주곡>이었습니다. ‘시든 꽃은 사랑에 실패한 젊은이가 내가 죽거든 그 아가씨와 무덤에 함께 묻어 달라. 그녀가 나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날, 모든 꽃은 활짝 피어나리라는 내용의 다소 맥 빠진 곡입니다. 슈베르트는 그 다소 맥 빠진 듯한 곡의 주제로 꽤 긴 변주곡을 작곡한 것입니다. 꽃은 아름답습니다. 꽃이 지면 섧습니다. 그 슬픔을 길게 변주하며 노래하는 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고 그것은 제게 전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오월은 갔습니다. 이제 유월입니다. 꽃은 지고, 잎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있습니다. 예쁘기는 꽃이지만, 칙칙하게 우거진 숲에 서면, 이파리들도 정겹게 보이기도 합니다. 잎이 우거져야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향긋한 과즙을 담습니다. 슈베르트는 그 아름다움을 진즉 발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꽃들이 아름다울 때만 삶이 아닙니다. 나무들이 흔들림 속에 향기가 과육에 배이듯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봐야 삶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곧 두고 보십시오. 역사가 말해 주지 않습니까. 양심을 팽개치고, 양심에도 없는 아부로, 능력에 닿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비굴하게 웃는 모습들이 정말 불상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이 땅에는 슬픈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훌륭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이 속절없이 가셨습니까. 꽃이 지고,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면, 그것이 시든 꽃들에 대한 기억이고, 변주 아니겠습니까.

 

을하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