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 2010년 4월호에서 전재
“김길태와 <보이A>”
부산 여중생 이모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작은 잘못에도 엉뚱한 거짓말을 하거나 변명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거짓말쟁이로 알려져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김길태의 중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는 “남성적이고 활달하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한다”고 돼 있었지만 2학년 때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면이 보인다”고 바뀌었다. 3학년 담임교사는 김길태의 성격에 대해 “신중한 가치판단이 요구된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처럼 활달하고 운동 잘하던 김길태는 중학교 때는 겉으로는 쾌활했지만 말수가 적어지고 어두운 구석이 늘었다.
어머니 윤모(66)씨는 “길태가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난 어디서 왔어?”라고 가끔 묻곤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 떨어진 너를 내가 받았다”고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김길태가 ‘출생의 비밀’을 안 것 같았다고 가족들은 생각했다. 딸만 있던 종손(宗孫)인 아버지 김모(69)씨는 33년 전 교회 앞에 버려진 2살 김길태를 데려다 키웠다. 외삼촌(55)은 “‘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길태라 이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1993년 부산의 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김길태는 그해 10월 스스로 자퇴서를 낼 때까지 40여일을 결석했다. 담임교사는 ‘태만으로 인한 결석’이라고 자퇴서류에 썼다. 김길태는 자퇴서에 “공부를 하기 싫어서 입니다”라고 적었다. 지능검사 결과는 중학교 시절 85, 고등학교 때는 86였다. 하지만 워낙 성의 없이 검사받은 수치였다. 자퇴하던 1학년 때 성적은 49명 중 49등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길태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학교를 그만둔 그는 덕포동 옥탑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옥상 난간에 기대 담배 피우는 모습만 가끔 눈에 띄였을 뿐이었다.
김길태는 1996년 폭행 혐의로 소년심사분류원에 갔다. 그 뒤부터 김길태는 33년 인생 가운데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교도소 안에서도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가끔씩 반항적이고 폭력적인 기질을 보여 7차례나 규율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다. 정신질환자로 분류돼 특별 치료시설이 있는 진주 교도소로 2년여 이감되기도 했다. 출감했다가 1997년 9세 여아 성폭행 미수 혐의로 다시 징역 3년을 살고 나온 뒤부터 김길태는 더욱 숨어 지냈다. 몇날 며칠을 옥탑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김길태 사건을 지켜보면 최근에 개봉된 영화 <보이A>가 생각난다. 1993년 영국 리버풀의 한 쇼핑센터에서 ‘제임스 벌저’라는 2살 난 남자아이가 실종되었다. 이 사건은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사람들은 아이가 부모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되었고, 2살 난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 10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들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영국 범죄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슬픈 사건으로 기록되며 영국을 CCTV 천국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 조나단 트리겔은 이 사건을 소재로 소년 범죄에 대한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한 작품 ‘boy A’를 집필했고 영국 최대 제작사 Film4와 존 크로울리 감독에 의해 스크린화 되었다.
14년간 감옥에 갇혔던 소년이 세상으로 돌아와 겪는 가슴 아픈 일들을 그린 영화 <보이 A>의 주인공 ‘잭’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백지상태의 소년 그 자체였다. 소년들은 늘 부서질 것 같았다. 그들의 파랗고 투명한 눈은 눈물을 흘릴 기력조차 없어 보였고 말갛고 해사한 낯을 하고 있어도 아름다운 만큼 불안해 보였다. 소년 ‘잭’은 유년기를 잃어버리고 소년기를 맞았다. 학교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소년 ‘잭’은 하나뿐인 친구와 지내는데 동년배 여학생에게 모욕당한 그 친구의 부추김에 못 이겨 결국 살인을 저지르는데 동참하게 된다.
김길태 사건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눈물>(2000)도 생각나게 한다. 이혼한 부모가 미워 가출한 한은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 사는 가리봉동으로 들어온다. 한은 폭력과 욕을 달고 사는 창을 만나고 창은 순진한 한에게 이것저것 얘기해 주며 친한 관계를 유지한다. 어릴 적 근친상간의 기억이 있는 새리는 나쁜 잠(섹스)을 자지 않는 아이, 새리는 한의 순수함에 이끌려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새리와 창의 여자 친구 란은 술집에서 일하고 창과 한도 그곳에서 삐끼 일을 하는데 술집 주인 용호는 호시탐탐 새리를 노린다. 한을 질투하는 용호와 계속되는 술집에서의 폭리로 결국 넷은 쫓겨나고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유흥가 밑바닥 삶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사회는 차가울 뿐이다. 창은 아기가 운다고 자기 아기를 때리는 음식점 여주인을 “왜 애를 때리느냐고…”하면서 여주인을 마구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자신이 맞으면서 컸던 악몽이 되살아 난 것이었다.
사회현상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으로 자유주의와 진보주의가 있다. 예를 들어 “가난”이나 “범죄행위”에 대해 자유주의는 그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반면, 진보주의는 구조의 문제나 제도 미비의 탓으로 돌린다. 물론 현실에 있어서 그 원인은 두 시각의 중간에서 찾을 수 있다.
끔직한 사건을 당하면 우리는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를 욕하고 처벌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끔직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이 어떻게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로 부터 소외되어 “외톨이”가 되는지도 또한 잘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러야만 그러한 범죄자가 다시 나오고 양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무엇을 바꾸기 위해서 사람, 구조(제도), 그리고 문화 중 하나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정한 변화는 세 가지가 한꺼번에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홍 종 정치학박사/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