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배웁시다.

    

짜자잔. -. . . 시작했어요.”

외손자가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고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엊그제 첫돌을 지났으니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몇 주쯤 빨리 걷고 늦게 걷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몇 걸음이, 사위는, 달나라에 갔던 우주인이 내딛던 발걸음이라도 되는 양, 신이 났습니다. “짜자잔. -.” 그 음악이 실로 가관이었습니다. 분명히 어디서 듣던 음악인데, 정체가 애매했습니다. 이제 저도 영원히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내가 혹시 치매가 왔나?”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침 다행히 생각이 났습니다. 지하철에서 기차가 들어올 때 나오던 바로 그 소리였습니다. 아니, 어떤 동요인데, 무슨 동요인지는 제가 알지를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양육하는 과정을 보면 실로 눈물겹습니다. 모국어는 엄마 아빠의 입술을 보고 배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걷고 이렇게 말하게 된 것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까. 종족을 보존하고 번식시키려는 본능과 교육은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 교육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당 부분 약화되지 않았나하고 여겨집니다. 옛날에 비하여 교육기간이 더 늘어났고, 비용도 엄청나게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 하려는가, 의구심마저 듭니다. 삶이 왜 이렇게 팍팍한가. 먹고 살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고, 사는 재미는 왜 이렇게 없는가. 우리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엉성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원인을 생각하다가 보면, 결국 문제는 교육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시지 않습니까. 무슨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분 말씀 들어보셨습니까. 무슨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했기에 그렇답니까. 학교 탓만 얘기할 수도 없잖습니까. 부모의 책임, 사회의 책임, 우리 모두의 책임 아닙니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동량이 되고, 아픈 사람을 살리는 자비로운 의사가 되라고 배웠을 것 아닙니까. 법은 왜 공부합니까. 왜 법을, 약으로 쓰지 않고, 독으로 쓰려고 합니까. 사람의 신체기능을 생각해 보십시다. 신체부위마다 다 기능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한 부위라도 문제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오죽하면 정부부처를 없애겠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대통령이 된다면, 맨 먼저 교육부를 없앤다고 하고, 누구는 미래창조부를 없애겠다하고, 누구는 어떻고,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등등, 없앤다고는 못하겠지만, 지금 무슨 짓들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잘 보십시오. 그 사람들, 말을 했다 하면 믿을 수가 있었습니까. 물어보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창피한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 앞에, 국민들 앞에, 본인 스스로, 그런 창피하다는 생각이 왜 안 들었겠습니까. 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어서 그랬겠지요.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었을까요. 능력에 비하여 과분하게 힘을 쓰는 것이겠지요. 누구가도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이 걸레만도 못한 사람을 귀하게 써 주셔서…” 자기 자신을 글쎄 걸레만도 못하다니, 세상에, 무슨 얘기를 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 친구는 뭐가 되고, 식구들, 자신의 부모님은 그 자식을 어떻게 여겼을 것 같습니까. 참으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 배운 것이 모자서 그렇겠습니까? 아마 잘 듣고, 잘 보고,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그렇게 해야 출세한다고 하는, 잘못된 경험에 바탕을 둔, 믿음과 신념 탓이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배움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나이가 몇이든, 스스로 노력하고, 주위를 둘러봐야 합니다. 한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별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인터넷시대에 알고 있는 지식의 양은 별 것이 아닙니다. 정보처리 기술,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과를 종합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직급이 높은 관리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 사건에 숨겨진 스토리를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퍼즐을 맞추듯, 알려진 정보들을 모아, 큰 그림을 떠 올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려면, 근본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그럴 수 없다면, 그런 가치관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고,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들 스스로를 치장해야합니다. 옷이나 장신구가 아니고, 우리들 내면을 아무리 호사스럽게 치장을 한들 어떻겠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수하게 중학교를 졸업한 수준의 지식이라도 제대로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예체능이 그렇습니다. 미술 음악 체육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부터 단절이 생겼는가. 억울할 때가 많습니다. 헌책방에서 옛날 중학교 음악자습서를 샀던 적이 있습니다. 음악문법이라는 악전은 역시 어려웠지만, 그밖에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미술자습서는 아직 찾아보지를 못했습니다. 마음먹은 김에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운동경기는 규칙이 자주 바뀐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구입한 운동경기규칙사전은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축구경기 룰은 웬만큼 짐작이 되는데, 미식축구는 물어 볼 사람도 마땅하게 없습니다. 그 정도는 아는 교양인이 되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무협소설들은 수법이 상투적입니다. ‘가 있고, 보검이나, 비급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어리고 약하고 억울합니다. 어떤 고수를 만나서, 오래 된 우물이나 무덤 속 같은 데서, 숨겨져 내려오는 무예를 전수 받습니다. 다음은 더 뻔합니다. 복수지요. 우리 삶에도 숨겨져 내려오는 비급이 있어서, 기인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통쾌하게 살아 볼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삶에 그런 비급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몇 가지 알려진 얘기들은 있을 법 합니다. 창피하지만, 우선 중고등학교 자습서로 교양을 다져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하고 싶었던 것, 부러웠던 것을 기억해 내셔야 합니다. 아무 것인들 어떻습니까. 첫 사랑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마지막 사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진공관 앰프가 생각납니다. 물론 어렵겠지요. 어디서 어떻게든 배워보고 싶습니다. 누가 압니까. 언젠가 누가 고수라고 불러줄지.

을하

This Post Has 3 Comments

  1. anyone

    오늘 헌책방에서 중학교 미술, 음악 자습서 샀습니다. 고등학교용은 없었습니다. 아예 없는 것인지, 있는데 그 책방에는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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