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이 봄도 찬란하게 저물고 있습니다.


봄은 전보도 없이 온다.’라고 했지만, 그 설래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짙푸른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 봄도 찬란하게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매양 기다리며 헤아려보던 꽃이 피는 순서도, 복수초부터 시작하여 영춘화와 미선나무 동백, 매화 모란 하다가, 작약 해당화 양귀비 장미 하면서, 그만둬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꽃들이 순서도 없이 마구 피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누가 남원 지리산 바래봉 철쭉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드론이라도 이용했던가, 능선을 따라 만개한 철쭉이 장관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카톡방에 그 사진을 공유했더니, ‘언제 이렇게 철쭉이 피었느냐.’고 하며, ‘올해에는 이미 늦은 듯하니 내년에는 꼭 가봐야겠다.’라는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저도 못내 서운해서, ‘져가는 꽃이라도 구경을 해보자.’라는 심산으로 바래봉을 찾았습니다. 주차장에서 4.8km, 힘겹게 정상에 오르니 철쭉은 봉오리만 맺혀 있었습니다.

 


철 따라 제철에 어디를 찾아가서 무엇을 구경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몇 년 전 봄날, 구례 화엄사 홍매와 구례구역에서 섬진강 강변을 따라 곡성 쪽으로 난 도로변의 벚꽃 터널을 지나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승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기까지 했습니다. 올해에도, 저는 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쯤 행여 꽃이 피었을까 싶어 문득 찾아갔더니, 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그즈음 날씨도 온화하고 비도 순조롭게 내려서, 만개한 꽃들이 싱싱하고 윤곽이 선명해서 색깔과 입체감이 그 어느 해보다 또렷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계절과 날씨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만, 그 어느 곳인가 아름다웠던 순간이 생각나면, 훌쩍 떠나서 찾아갈 일입니다. 어디 그뿐 입니까, 평소 고마운 분들께도 그렇게 깜짝 찾아가 뵈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우리나라 산하는 해가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우선 산에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졌고, 여러 가지 신품종 조경수들이 널리 공급되어 곳곳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가뭄에도 산에 나무가 짙푸르니 저수지에 어느 정도 물이 고이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묘목들도 해가 갈수록 신품종이 나오는데 꽃 색깔이 선명하고 향기가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배롱나무 가운데 다이나마이트라는 품종은 어찌나 색깔이 짙고 선명한지 모릅니다. 산당화도 그렇습니다. 화엄사 홍매처럼, 색깔이 검은빛이 돋을 정도로 짙붉은 신품종이 나와 있습니다. 묘목은 대개 꺾꽂이로 뿌리를 내리는데, 꼭 성냥개비 한 개 크기로 몇천 개씩 가지를 잘라서 깨끗한 마사토에 심는 듯합니다. 그 꽃나무들이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 땅의 어디엔가에 심어져서 꽃을 피우고 자랄 것 아닙니까. 복숭아꽃 살구꽃 말고도 꽃이 참 다양해졌습니다.

 


요즘 오월은 늦봄 같지 않고 이른 여름처럼 느껴집니다. 그것도 지구온난화 영향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사계절이 다르게 구분되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어디 사느냐에 따라서 모란꽃 피는 오월이 아니라 모란꽃 피는 사월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땐가부터 중국의 문화 중심이 황하 근처의 북경에서 아래 양자강 부근의 쪽으로 내려간 점도 우리가 문학에서 계절 감각에 혼돈을 느끼는 원인일 수가 있습니다. 북경과 남경은 언제 꽃이 피느냐는 사계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봄을 맞든 옛날 고향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왜 구슬픈 피리 소리만 들으면 고향 동네의 동구밖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어디 시인의 마음뿐이겠습니까.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오월은 타향살이들이 더욱 고향 생각을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도연명이 귀거래사를 읊은 때가 41세쯤이라고 합니다. 소동파나 왕희지 같은 소()나 왕() 씨들은 왕조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잘 나가는 집안들이었던 모양입니다. 어지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적벽강에 배를 띄워서 소동파처럼 친구들과 놀 수가 있고, 난정에 친지들을 불러 모아 술잔을 물에 띄우면서 풍류를 즐길 수 있었겠습니까. 거기에 비교하여 도연명은 먼 친지의 도움으로 멀리 떨어진 객지에서 미관말직 벼슬살이하다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향으로 돼 돌아왔다는 얘기 아닙니까. 나이를 먹은 꽤 아들이 아직 배나 사과 같은 과일만 찾는다며 신세타령까지 늘어놓는 모습이 여느 사람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웃음이 저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모름지기 자기 분수를 지키는 그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무슨 깜이 못 되는 사람들이 벼슬을 하겠고 나대는 세태가 꼴불견들 아닙니까?

 


아침 식탁에서 삿대질이 뭐지?’하고 물어봤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한결 느긋해진 집사람이 바로 이거지 뭐!’하며 일부러 과장된 모습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하며 쾌재를 하면서, ‘그것은 손가락질이지 삿대질이 아냐! 그러니까, 그 삿대가 뭔지를 모른다는 얘기지.’라고 놀려줬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도 얘기하고,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를 인용도 했습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잖습니까? 새파랗게 젊은 여자 국회의원이 존엄한 국회의장을 향하여 삿대질했다는데, 본인은 극구 다섯 손가락을 오롯이 모았기 때문에 그것은 삿대질이 아니라고 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마 그 젊은 의원도 삿대질과 손가락질을 구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꿎은 집사람만 놀려줬지만, ‘이 봄도 참 찬란하게 가는구나!’하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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