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이 지났습니다. 밤은 길어지고 낮은 더욱 짧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꼬박 석 달 동안 동지까지 밤은 더욱 깊고 길어질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벽녘 잠이 없어졌습니다. 마흔에 시골로 이사 와서 이른 아침 안개 낀 경치를 보려고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잤다가 깨곤 합니다. 동이 트기까지 몇 번씩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곤 합니다. 고대부터 여러 민족이 동지를 왜 명절로 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벼 한 단 길이만큼 길어진다고 했습니다. 요즘 시간으로 환산하면 2분쯤 된다고 합니다. 기후변화 탓이라고들 합니다만 지난여름도 찌는 듯 더웠습니다. 처서 지나자 느닷없는 비가 며칠 내리더니 갑자기 날씨가 선선해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옷섶에 스며드는 삽상함이 ‘럭셔리’하게 느껴집니다. 가히 등화가친, 책 읽기 최고로 좋은, 계절이 온 것입니다.
시골에 살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 할 수가 있습니다. 8월 하순 처서 즈음이면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모두 김장 채소 붙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한 집 김장거리 정도의 배추 모종은 시내 종묘상에서 몇 판 사다가 심지만, 전문적으로 배추 농사를 짓는 농가는 자체적으로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웁니다. 웬만하면 수천 포기 넘게 심으니 모종값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장하려면 배추보다도 양념값이 훨씬 더 많이 듭니다. 김장할 때, 안 넣으면 서운한 것으로 미나리가 있습니다. 여느 때 한 단에 3천 원쯤 하던 것이 김장 시즌이면 6천 원부터 7천 원까지 오릅니다. 저의 집은, 배추는 김장할 때 사서 담글 폭 잡고, 무와 쪽파만 꽤 넉넉하게 심었습니다. 무는, 그야말로, 커도 먹고 작아도 먹습니다. 쪽파는 잘 여문 종자를 심어야 합니다. 김장할 때 유용하기도 하지만 봄철에 살이 도톰하게 올랐을 때 파나물은 별밉니다.
밭을 꾸미고 채소를 가꾸다 보면 “이것이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전업농가라면 수익을 따지겠지만 텃밭에 서너 두렁 채소를 붙여서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것은 어떤 경제적인 목적보다 과정이 더 재미가 있습니다. 풀을 뽑고 반듯하게 두렁을 친후 텃밭을 바라보면 땀을 흘렸던 보람이 바로 나타납니다. 자기가 일한 효과가 바로 나타나서 눈앞에 보이는 경우는 많지를 않습니다. 가을이면 충청도 양촌장에 가서 ‘두리시’라는 감을 사서 곶감을 깎습니다. 대개 서너접 깎는데 어느 해는 열 접도 넘게 깎은 적이 있습니다. 천 개를 넘게 곶감을 손으로 깎았다면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곶감을 깎아서 걸어두면 일한 효과가 눈에 바로 보입니다. 40일쯤 지나서 ‘반시’ 상태로 먹는 맛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도 꽤 큽니다.
저의 집 딸이 출가해서 외손자 외손녀를 낳았습니다. 외손자는 지난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외손녀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답니다. 외손자 외손녀가 귀엽게 크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저의 아이들을 키웠던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때도 분명히 제가 저의 아이들을 이뻐했을 텐데 잘 기억이 잘 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꼭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목표를 갖고 키운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마 많은 부모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무슨 특정한 직업을 갖게 되기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꼭 그 목적대로 키울 수도 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바랐던 그런 소망보다도 뒷바라지하며 키우던 시절 자체가 행복이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싹이 터서 자라고는 것을 지켜보며 흙을 북돋아 주는 과정도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비단 고르려다 삼베 골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어른들께서 하시던 말씀을, 뜻도 잘 모르고, 들었던 말 같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비단이 뭔지 삼베가 뭔지 아마 구체적으로 실감을 못 할 것입니다. 저는 비단이라면 박재삼(1933-1997) 시인의 ‘무제’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시 전문을 소개하면, <<대구 근교 과수원/가늘고 아늑한 가지//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아침을 흔들고//기차는 몸살인 듯/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애인이여/멀리 있는 애인이여//이런 때는/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입니다. 전기가 아니라,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삼베라면 까실까실한 여름 홑이불이 생각납니다. 삼베와 모시는 다르답니다. 삼베는 ‘대마’라는 한해살이풀로 만들고, 모시는 ‘모시풀’이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만든답니다. 비단과 삼베는 좋고 나쁜 것 두 가지의 극단적 비유인 셈입니다.
옛날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속여서 중매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혼담이 오고 가는 중에 사돈 될 어른이 찾아오면 동네 기와집을 빌려 자기 집이라고 속이는 일도 흔했답니다. 여자는 한 번 출가하면,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평생 친정을 몇 번 안 가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혼사만 이뤄지면 물릴 수가 없었고 그럴 때 나온 말이 바로 “비단 고르려다 삼베 골랐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어쩌다, 누구 말을 들었든, 제일 좋은 것을 고른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제일 나쁜 것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한탄부터 먼저 터져 나옵니다.’ 내가 찍었든 안 찍었든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비단 고르려다 삼베 골랐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습니다. 도대체 대법원장은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을하
#시사전북 2023녕 10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