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렇게 되었나 싶게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가을의 초입에는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는 문자가 왔었는데, 엊그제는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변종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으라는 문자가 또 왔습니다. 요새 변종 코로나가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도 있고, 주위 계신 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집사람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만, 세상만사 어디 쉬운 일이 있나 싶게, 전주 시내 병원을 뺑뺑 돌아다니다가 겨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백신 접종은 11월부터 월요일과 수요일에만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전화로 문의한, 두 번째 병원에서는 ‘독감백신을 맞고 1개월이 지나야 코로나 백신을 맞을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보건소에 문의하니 ‘일반병원에서 백신을 맞습니다.’라고 할 뿐입니다. 질병관리청에 문의하여 어느 병원에 백신이 남아있는지 알려줘서 겨우 백신을 접종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뒤숭숭합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진흙탕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상황에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이 인종 말살 작전으로 변질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언론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잔혹한 테러를 보도하더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둘레에 높은 콘크리트 담장을 쌓고 소위 ‘잔디 깎기식 관리(?)’를 해왔답니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의 힘이 웬만큼 커지면, 정원의 잔디가 무성해지면 깎아버리듯이, 적정수준까지, 공격하고 파괴하는 정책을 써왔답니다. 2008년에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1942- )이 이스라엘 볼프 재단의 상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의 평화를 사랑한다는 건국이념은 어디 갔느냐?’며 당시 여자 문화부 장관과 언쟁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느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얼마나 자기 자신의 아픔과 슬픔으로 느낄 수 있느냐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의 도덕적 척도라면 이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호의호식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희희낙락 좋아할 일입니까? 왠지 찜찜한 일입니까?’ 생명체가 굶주린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세상에서 생산되는 곡류의 80% 정도가 동물의 사료로 주어진다고 합니다. 인류가 육류를 먹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어도, 우리는 개의치 않고 있는다는 뜻 아닙니까. 얼마 전, 우리나라 통일부 장관이라는 분이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모양’이라고 했답니다. 그것이 과연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었을까요?
엊그제 국회에서 내년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었습니다. 본회의에서 연설하기 전에는 대통령이 삼부요인과 함께 여-야 대표를 만났고, 연설을 마친 다음에는 각 상임위원장과 회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만남은 윤석열 정부 들어선 후 처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언론에서는 “참석자들도 놀란 ‘이재명 1분 발언’”이라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내용은 ‘단식할 때 내걸었던 얘기는 안 하고, 민생얘기만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삼권분립은 물론이고, 언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언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십니까. 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야당 성향의 몇몇 신문을 ‘기관지’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언론을 보면 참 가관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몇몇 언론은 ‘어둠과 맛소금’이 되었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요?
요즘 세계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은 각국의 비극은 선출된 정치인들이 “자기에게 제도적으로 맡겨진 역할을 지나치게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대 대통령들도 대부분 대통령으로 선출이 되면 ‘누구 집 호주 상속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했었습니다. 권력자 주변에는 아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권력자가 어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가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있습니다. 옛말에 ‘인의선악우(人依善惡友)’라거나 또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습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 자체에도 그런 뜻이 있답니다. 제가 지난번에 ‘비단 고르려다 삼베 골랐네.’라고 얘기를 했더니, 어느 선배분께서 ‘삼베 고르려다 비단 고를 수도 있어!’ 하셨습니다. 저는 ‘선배님께서는 여전하시군요.’ 하며 웃고 넘어갔지만 씁쓸했습니다. 그러면 좋으련만, ‘삼베 고르려다 비단 골랐다.’라는 속담은 없지 않습니까?
명분이 분명해야 합니다. 세상이 뒤숭숭한 것도 명분이 없는 일들을 억지로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에 큰 감 놓으려 한다.’라고 하면 누가 그 사람을 신뢰하겠습니까. 공직자는 무엇보다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일종의 ‘재능기부’ 아니겠습니까. 공직자가 재능이 있다면, 남을 위하여 봉사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가 바짝 다가왔습니다. 관공서나 음식점이나 대부분의 곳이 사람 대신 전자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알려주고 빨리 적응해야 합니다. 새로운 매뉴얼을 익혀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도 문제지만 정보의 불균형도 심각합니다. 서로 함부로 무시하지 말고, 도와줘야 합니다. 세상이 뒤숭숭할수록 각자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도록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 풍진 세상에,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품위를 높이고 자중자애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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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전북 2023년 11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