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을 닮는 답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라고 읊은 시인은 김기림(1908- ?) 이었습니다. 전화도 면에 몇 대뿐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급하게 연락할 일이 생기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쳤습니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며칠 전에 엽서나 편지를 부쳤습니다. 유치환(1908-1967) 시인이 이영도(1916-1976) 시인께 보냈다는 ‘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는 연애편지 얘기도 바로 그 시절이었습니다. 올봄은 유난히 빨리 온 듯합니다. 전 세계적인 ‘기후 온난화’ 탓인지, 아니면 우리 지역의 지리적인 환경 때문인지, 아마 두 가지 모두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고장 날씨만 유달리 좋았다고 마냥 안심할 수만 없는 것이 온난화가 진행되면 지진을 비롯한 엄청난 천재지변이 언제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봄이 왔다는 것은 곳곳의 밭두렁에 쌓아놓은 유기질 퇴비로 알 수가 있습니다. 대개 가축분뇨와 톱밥 등을 삭혀서 만든 것으로, 정부 보조금이 있어서 그런지, 거의 모든 농가가 농지면적에 따른 최대량을 주문하고 있는 듯합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의 거름에 대한 욕심은 대단합니다. 언젠가, ‘봄철에 퇴비 한 짐은 곡식 한 짐과 안 바꾼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얘깁니다. 처서 무렵, 고춧대를 뽑아낸 자리에, 김장 때 쓰려고, 쪽파 씨를 넉넉하게 사서 심었습니다. 봄철에 밑거름을 꽤 했다 싶어서 따로 거름을 안 했더니 쪽파잎이 누렇게 되면서 자라지를 않았습니다. ‘김장 때 쪽파 걱정은 말라.’라고 했는데 쪽파부터 사야 했습니다. 퇴비 가운데 식용유공장에서 나오는 콩 찌꺼기를 섞어서 만든 것도 있습니다. 그런 유기질 퇴비는 넉넉하게 사뒀다가 울안 정원수나 화분에 뿌려줘도 냄새가 안 나서 좋습니다.

‘한뼘데기 논밭이라 할 일도 없어, 흥부도 흥얼흥얼 문풍지 바르면 흥부네 문턱은 햇살이 한 말./파랭이꽃 몇 송이 아무렇게나 따서 문고리 문살에 무늬 놓으면 흥부네 몽당비 햇살이 열 말’ 박용래(1925-1980) 시인이 1970년 4월에 발표했다는 ‘소감小感’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계절이 늦가을 같은데, ‘한뼘데기 논밭이라 할 일도 없어’라는 구절 때문인지 저는 여느 때에 가끔 생각이 납니다. 한뼘데기 논밭도 없어서, 관심사라고는 어디에 꽃이 언제 피는지, 누구네 잔치는 언제 하는지, 그런 생각만 나는 것이지요. 언제부터 ‘남도매화탐방南道梅花探訪’이라는 솔깃한 얘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 자장매慈藏梅, 산청 산천재 남명매南冥梅,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구례 화엄사 화엄매華嚴梅,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가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지역에서 각종 축제도 열린답니다.

우리 고장이 따뜻해서 그런지 저의 집 뜰의 홍매는 우수 무렵, 2월 19일, 피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화엄매는 언제 피는가 싶어서 화엄사 종무소로 전화로 문의했더니, ‘꽃이 피려면 아직 멀었고, 매일매일 사진을 찍어서 화엄사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교통도 불편했던 시절에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다가 ‘아직 일러 못 보고’ 온 사람이 서정주(1915-2000) 시인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멀고 먼 남쪽 산골짜기에 제때 제대로 활짝 핀 꽃을 보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오죽하면 ‘인연이 닿아야 볼 수 있다.’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제철에 꽃이 핀 모습은 아니지만, 남명매만 빼고, 나머지 매화는 몇 번씩 본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들이는 동행들과 오가면서 나눴던 정겨운 정담과 대화가 그 어떤 풍광이나 음식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싸움을 말릴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싸움을 말려야 할 어른 저들이 저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월 10일에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별별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9일 소위 ‘쌍특검법’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했던, ‘대장동 특검’과 ‘김건희 특검’에 대하여 국회에서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습니다. 애초 야당에서 쌍특검 표결은 ‘꽃놀이 패’라고 봤습니다. 공천에 불만을 품은 여당 의원들의 반란표를 기대했습니다. 반란표로 가결되면 좋고, 부결되더라도 민심의 저항을 예상했습니다. ‘자중지란’은 야당에서 일어났습니다. 자칭 ‘이재명-문재인’이 통합한 ‘명문明文-정당’이라더니 ‘멸문滅文-정당’이 됐답니다. 어떻게 민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못된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은 며느릴수록, 나이가 들면, 그런 시어머니를 쏙 닮아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실감하고 스스로 반성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경계하고 있는 속담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간다.’라는 것입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가자지구 북부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군(IDF)의 발포로 104명이 숨지고 760명이 다쳤다 합니다. 영국의 BBC방송은 목격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상자의 상당수는 혼란이 발생하자 현장을 벗어나려던 트럭에 치여 발생했다는 보도도 했답니다. 히틀러의 나찌정권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600만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탄압하고 학살했답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잔혹해졌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협치를 모른다고 비난하던 이재명 야당 대표의 요즘 행태는 어떻게 이해가 될까요?

을하

#시사전북 2024년 3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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