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뭣하고 먹지요?” “김치찌개지 뭐, 묻지 말라니까!” 집사람이 신혼 초부터 묻는 질문이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 같은 저의 대답입니다. 아무리 김치찌개라도 똑같은 것을 두 끼 이상 먹으면 질립니다. 어디 김치찌개가 한 두 가지뿐입니까. 두부와 콩나물은, 있으면 언제나 좋지만, 없어도 괜찮습니다. 멸치를 넣었다가, 꽁치를 넣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넣었다가, 참치를 넣으면 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가을에는 전어가 있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묵은 김치에, 붕어를 넣고 지져도 별미입니다.
언젠가 전주 모래내 시장에서 오래 된 지인을 만났습니다. “점심은 드셨습니까?” “방금 무국에 밥 말아 먹고 나왔습니다.” “저도 방금 무국을 먹고 나왔는데요.” “아, 그래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니 묘한 친밀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뒤 가끔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둘 다 주관이 강하지만, 함께 쾌재를 부르며 의견 일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얘기 끝에 제가 그랬습니다. “남자라고, 어떤 X들은 음식이라면 라면밖에 못 끓인다는 X들이 있는데, X싸가지들이야!” “정말 옳으신 말씀을 하셨네요. 그런데, 여자들도 그런 여자가 있다니까요?” “나도 봤는데, 꼴불견이야. 말이 돼야 말이지”
음식은 ‘배려’입니다.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입맛이 어떤지, 그 입맛에 맞게 ‘배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주부 가운데에는, 저의 집사람도 그렇지만, 본인은 안 먹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식성이 따로 있지만, 상대방을 위해서 상대방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합니다. 음식을 잘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최고로 잘하는 줄 알고 자기식대로만 합니다. 그것은 못 된 정치가들과 똑같습니다. 자기들이 잘못한 줄은 모르고 국민들 탓만 하거든요. 제 입장에서 보면, 그런 정치가는 틀림없이 라면도 잘 끓이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집 김장은 언제나 어머님께서 주관을 하셨습니다. 저는 김치는 원래부터 무조건 맛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어머님이 편찮으시고 몇 해 동안 간장과 된장을 담그지 못했습니다. 집사람 건강도 문제가 생기더니 이번에는 김치 맛이 달라졌고, 김치찌개도 영 제 맛이 나질 않았습니다. 생된장에 풋고추를 찍어먹는 맛도 사라졌고, 제가 최고로 좋아하는, 붕어김치찌개도 ‘별로’가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김치들을 모셔왔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우리 집 김치가 다문화 가족이 되었네.”라고 하니, 집사람이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했습니다. 희미한 웃음이 꼭 빙허 현진건의 ‘빈처’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작년부터, 집사람의 감독 아래, 제가 김치를 담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는 실패했습니다. 소금에 절인 간이 덜 빠져서 뒷맛이 썼습니다. 금년에는 김치가 그런대로 담겨진 것 같습니다.
벌써 15년 전 쯤 됩니다만, 매일 아침 남부시장에서 콩나물국밥을 사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집의 콩나물국밥은 특이 했습니다. 전 날 미리 밥을 해서 큰 소쿠리에 퍼놓습니다. 콩나물은 물이 펄펄 끓을 때 살짝 데쳐서 찬물에 담급니다. 투가리에 밥 한 덩이 넣고 콩나물 한 줌 얹어 뜨거운 국물에 토렴을 합니다. 국자로 밥알을 으깨고, 마늘 대파 청양고추를 다져넣고 양념을 했습니다. 거기까지는 다 똑 같은 콩나물국밥입니다. 그 집의 맛은 그 다음부터에 있었습니다. 단골들이 자기들이 먹을 김과 젓갈을 사왔습니다. 양념은 주인 양 여사가 해 주셨습니다. 그 젓갈과 김이 남으면 단골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 젓갈과 김에 시큼한 김치를 얹어 먹는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맛있는 젓갈과 김을 사오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 매곡교 다리 위에서, 양 여사님을 뵙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동안 무릎 루머치스도 나으시고 건강한 모습이셨습니다.
우리 고장에 손님들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관광버스가 줄지어 늘어서고, 어느 사이에 이름난 관광지가 됐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음식입니다. 혹시 손님들이 돌아가고 나서 흉이나 보지 않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음식 맛이 있든 없든 손님들이 밀려들면 문제가 생깁니다. “음식을 아무렇게 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망설이다가 들어간 집에서 실망하면 후회가 오래 갑니다. 지금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두고 보면, 오래 망설이다가 우리 고장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가족과 같은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간해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점에서 사먹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소고기 맛있는 부위는 정말로 비쌉니다. 일식집에서 생선회도 얼마나 비쌉니까.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면 우리가 식재료를 구입하여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고기가 맛있고, 신선한 채소나 생선을 제대로 고를 줄 알아야 합니다. 새벽시장에 가면 좋습니다. 민물새우를 한 종발 사서 무 넣고 잘팍하게 졸여 보십시오. 무시래기에 된장을 풀어서 매콤하게 지져도 보십시오. 가족을 위한 그 정성이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가 입은 차림은 소박하더라도, 아침에 따끈한 국물은 오붓하게 나누어 먹고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 밖을 나서면 찬바람 부는 쌀쌀한 세상, 가슴속에서 감도는 훈훈한 기운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온갖 치장이 다 들어있는 궁궐 같은 배추 속, 거기에 담긴 가족의 정성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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