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지 카오리(Muraji Kaori 村治佳織, 1978- )가 기타로 반주하고, 테너 얀 코보(Jan Kobo, 1966- )가 노래를 부르는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었다.
무라지의 나이가 벌써 32인가, 머리에 노랑물을 들이고 짤랑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조신한 한 여인의 모습이다.

나이가 든 카오리는, ‘아름답다’라기 보다는 ‘왠지 품위가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품위가 있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아는 분이 서울에서 열렸던 바이올린니스트 ‘힐라리 한’의 음악회를 다녀와서 바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
‘ 바이올린 소리는 약간 쇠소리가 섞였는데 그런대로 좋았고, 그것 보다도 힐라리 한이 무대에 걸어나오는데, 정말로 품위가 있던데요’
‘힐라리 한’은 체구가 작고, 빨간머리 앤’ 처럼, 얼굴에 주근깨가 많다.그런데 하이힐을 신고 무대를 걸어나오는 모습이 그렇게 의젓하게 보이더란다.
‘무라지 가오리’에게도 그런 비슷한 품위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물방앗간아가씨’를 기타로 반주하다니, 감격스러웠다.

내게 얀 코보는 생소하다. 목소리가, 이안 보스트릿지를 닮은, 결핵환자와 같이 밭은 소리가나는, 카운타테너 음색이다. 검색을 해보니 베를린 출생, 베를린국립성가대- 대성당성가대 등, 성가대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 소프라노 역활로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녹음도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합창단 출신은 어딘가 박력이 부족하다. 동독 출신의 테너 페터 슈라이어가 그 대표적 인 예다. 코보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아가씨’에서 9곡을 발췌해서 들려줬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서 아름다운 부분은 <제6곡 물어보는 사람, 제8곡 아침인사. 제9곡 물방아간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얀 코보’의 음악회에는 정작 그런 곡들이 빠져서 아쉬웠다.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떠돌던 중세의 음유시인 흉내를 내는 듯한 소리였다. 그렇게 슈베르트를 부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패러다임(paradigm)을 바꿨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어느 시대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틀에 변화를 줬다는 뜻이다. 독일 가곡사를 보더라도 그런 얘기를 한다. ‘피셔-디스카우’가 독일가곡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한다. 그 말의 뜻은 짐작이 갔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감흥이 오지 않았다. 그러더가 ‘게르하르트 휫쉬’의 옛날 SP녹음을 듣고 이해할 수가 있었다. ‘피셔-디스카우’가 얼마나 독일 가곡을 잘 브르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는 얘기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성악가도 또 다른 불세출의 인물이 나타나서 그 빛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곤 한다.

몇 연전에 작고한 ‘헤르만 프라이’도 인기가 높았었다. 생전에 서울에서 청중들의 앵콜을 여러차례 받아줘서 그 서민적인 풍모에 감탄들을 했었다. 헤르만 프라이가 부른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이 DVD로 나와서 봤다. 실황 녹화가 아닌 스튜디오 녹음이고 나이가 들어서일까, 반복되는 매너리즘적인 기교가 거슬렸다. 그래도 ‘아름다운 물방앗간아가씨’는 괜찮았고, 옛날 나왔던 LP판 ‘독일민요집’이 좋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었어도 피셔-디스카우가 빠리에서 ‘아름다운 물방앗간아가씨’를 실황 녹음한 DVD는 기가 막히게 좋다. 카메라에 잡히는 피셔-디스카우의 눈동자가 세살 어린이 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자세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다.
을하

디스카우의 “겨울나그네” 좋아했었는데, 엘피판들을 모두 내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별로 들을 게 남아있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