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 미친꽃’이 뭐야? 소극장 앞을 지나가다가 낮선 포스타를 보고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하, 연극제목이구나. 그런데 무슨 뜻이지? 찔레가 미치다니, 찔레가 미치게 폈다고?
섹스피어피어의 희곡 ‘햄릿’을 각색하여, 극중에 나오는 ‘오필리아’를 ‘찔레’로 바꿔서 부른 것이였습니다. 발상이 기발하지 않습니까?

덴마크 황태자 햄릿의 약혼녀로 왕비가 될 뻔했던 여자, 그러나 햄릿이 거짓으로 미친척하자, 정말로 미쳐버렸던 여자, 미쳐서 물에 빠져 죽어버렸던 여자. 어찌 그렇게 ‘오필리아’의 이미지가 ‘찔레’를 떠오르게 하는지, 절묘하지 않습니까?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박가분’과 ‘동동구루무’입니다. ‘동동구루무’ 장사는 큰북을 등에지고, 두 발에 북채를 연결하여, 걸음을 뗄때마다 ‘둥둥’ 북이 울렸습니다. ‘동동구루무’라는 이름 자체가 북소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중반이셨던 어머님은 ‘동동구루무’를 사서 바르셨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그 냄새가 그대로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직 ‘샤넬 No.5’ 냄새는 알지를 못합니다. 이미 맡은 적이 있겠지만, 원래의 냄새를 모르니, 맡았던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잠을 잘때 유일하게 입었다는 것이 ‘샤넬 No.5’ 아닙니까. 왜 우리 엄마는, ‘샤넬 No.5’ 가 아니고, 동동구루무를 발랐을까. 그래서 개화기 때 나왔다는, ‘박가분’이나 ‘동동구루무’ 얘기가 나오면 왠지 나를 챙피해지게 만들었을까. 찔레꽃에게서도 나고 작약꽃에서도 나는, ‘동동구루무’ 냄새가 아무래도 싸구려 냄새 같아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튜립이나 장미보다 작약과 찔레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던 때가 어제였던가,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작약은 찔레보다 더 톡 쏘는, 코를 찌르는듯한, ‘동동구루무’ 냄새가 났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고, 냄새에 대해서도 제 나름대로 ‘주체성’이 생긴 이후일 테니까요.

‘샤넬 No.5’ 보다, 작약과 찔레, 바로 ‘동동구루무’ 냄새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제대로 여기게 된 것은, 어쩌면 정말 최근 일, 바로 엊그제였다고도, 이 사진들을 찍었을 때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 찔레꽃 향기가 부끄럽지않느냐?’하면, ‘아니, 좋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때가 말입니다.

아, 장사익이가 부르던 ‘찔레꽃’ 노래만 듣고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왜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라고했는지, 길게 노래를 빼면서 불렀는지 알았어야 했습니다.

장사익의 ‘찔레꽃’을 반주하던 임동창이가 치던 피아노소리가, 이제 기억해 보니, ‘동동구루무’ 소리였습니다.
‘…동동동, 찔레꽃 향–기는–동동동… 나를 울려–요…동동동.. ‘
을하

요즘 하얗게 핀 찔레가 어디서나 향기를 뽐내고 있습니다. 향기롭지만 소박한 자태가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찔레 한 송이 따다가 그릇에 물을 붓고 그 위에 띄웠습니다. 향기가 하루 종일 방안을 맴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