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창 선운사에는 꽃무릇이 한창입니다. 추석명절이라 고향을 다녀가시는 분들이 많이 들리셨습니다. 언젠가 지난번 다녀갔을 때 보다도 골짜기 입구 부근에 생태계 공원을 조성하여 시야가 넓게 트여서 좋았습니다. 노점에서는, 복분자가 제철이어서 그런지, 집집마다 대부분 복본자 생즙을 팔았습니다.

사진: 선운사 꽃무릇
어느 곳에 사람들이 제법 웅성웅성 모여있어서 가봤습니다. 바로 ‘인두화’를 구경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석에서 나무판에 인두로 지져서 인물화를 그립니다.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보면서 지지니,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그림이 실물과 얼마나 비슷한지 바로 알 수가 있어서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인두화를 그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분들이 고객, 그러니까, 부모님 같습니다. 튼튼하게 잘 생긴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여유롭습니다.

인두화 그리는 모습
유심히 바라보니 인두가 납땜을 하는 전기인두였습니다. 인두을 옛날에는 화로에 달구어서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리번거려 보니, 조금 떨어져서 전기발전기가 있었습니다. 일제 소형 혼다(honda)인데, 소리도 작고, 낚시질이나 캠핑갈 때 유용할 것 같았습니다.

인두화 그리는 모습

인두화 그리는 모습
너무 진지했나, 모델의 표정이 이상합니다.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려달라는 것은 아닐테고, 많은 관중들이 부담스럽고 긴장을 했었던지, 늘어지게하품을 합니다. 유행과 소위 ‘트랜드’는 어느 곳에나 있었습니다. 인두화 견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저도 욘사마와 박지성은 알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아줌마가 손가락질을 하시는데 누구를 가르키는 걸까요.
인두화 그리는 모습5

선운사골짜기 정경
어느 가족들인지는 몰라도, 곳곳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선운사골짜기 정경
누군가 꽤 사진을 아는 분 같았습니다. 사진이란 모름지기 ‘역광’이 좋고, 그 것을 잘 아는 사람 같았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비1
미당 서정주의 시비는 선운사 골짜기를 가기만 하면 눈에 띱니다. 일부러 안 볼 수도 없고. 미당의 많은 시 가운데 하필 왜 저 시를 새겨 놓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을 보고 시를 더듬더듬 다시 읽어 봤습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단군기원 사천삼백칠년
선운사 동구에서
미당 서정주

미당 서정주 시비2. 어느 누구신지, 시에 뜻을 뒀던 분 같았습니다.
시에 대한 실마리는 끝 부분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단기 사천삼백칠년이면 서기로 1974년, 유신시절이었습니다. 미당이 겪고 있었던 시대와 고향과의 불화가 느껴집니다. 일본식민지시대에도 그랬지만, 유한한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에 갈등이 시에 담겨있는 듯 합니다. 고향의 계절을 알지 못했고, 또 맞추지도 못한 미당 자신의 자조가 느껴집니다. ‘육자배기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라니, 무엇이 남았다는 것입니까. 이것 저것 껄적지는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 겠지요. 고향에 찾아와서 술 몇 잔을 걸치다보니, 옛 생각들만 하다가 돌아갔다는 뜻 아니겠습니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지면 미당의 일종의 ‘출구전략’이 담겨 있는 내용 같았습니다. 저기서 손사래치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 어이, 나 미당일쎄. 좀 뻔뻔스럽기는 하지만, 자네나 나나 같은 단군의 자손 아닌가. 나도 일이 잘 안 맞는 때가 많았고, 양심은 찜찜하고, 그랬었네. 어쩌겠나, 그리 이해하게.”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