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 눈이 쌓여서 황홀했습니다. 그 마음을 어떤 가사로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시집을 뒤저봤습니다. 이 마음을 대신할 노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눈이 내린 날 아침 그런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이한직(1921 – 1976,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 출생)의 ‘설구(雪衢)’라는 시가 있습니다. ‘눈내리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설구(雪衢)
이한직
첫눈 내리는 밤이었다.
가설같이 우원한 너의 애정에는
무엇보다 흰 것이 잘 어울렸는데
애달픈 나의 향일성을
받들어 줄 별은 왜 보이지 않았던가
기우러진 사상은
조화처럼 퇴색하려고 하였다
붕대에 싸인 나의 인생이
너털 웃음을 웃는 것이다
아득한 기억 속에
마지막 아마릴리스인양
너와의 약속이 피어 남고, 화액은
오히려 죄와 같이 향기로워
첫눈 내리는 밤이다
계절에의 공감만이
가난한 나의 가슴을 아름다이 장식하였다
두 눈에서 넘쳐흐르는 것은
흡사 눈물같이 따스하였으나
나는 구태여 휘파람을 날렸다
차라리
노리개처럼 즐겁게 살리라
첫눈 내리는 밤엔
파이프를 물고
홀로 밤거리로 나가자

신동집(1924 – 2003, 경북 대구 출생)의 ‘눈’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눈
신동집
아주 너를 떠나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펑펑 눈이 오는 밤이 었다.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내 자욱 소리는 나를 따라오고 너는
내 중심에서 눈의 것으로 환원하고 있었다.
너는 아주 떠나버렸기에 그러기에 고이 들을 수 있는 내 스스로의
자욱소리였지만 내가 남기고 온 발자욱은 이내 묻혀 갔으리라. 펑펑
내리는 눈이 감정 속에 묻혀 갔으리라
너는 이미 나의 지평가로 떠나갔기에 그만이지만 그러나 너 대신에
내가 떠나갔더래도 좋았을게다. 우리는 누가 먼저 떠나든, 황막히
내리는 감정 속에 살아가는 것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