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나의 삶, 나의 꿈’

크리스토퍼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 1940-   , 폴란드 브로츠와프 출생)의 음악회 필름을 봤다.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12번과 23번을, 2010년 2월 20일은 그의 70세 생일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직접 파리교향악단을 지휘하고 피아노를 쳤는데, 연주회가 끝나자, 축하 꽃다발을 받고, 교향악단은 ‘해피버스데이 투유’를 켜줬다. 그의 삶이 궁금하여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친절하게 몇 개국 언어로 되어 있었는데,  영어 독일어 불어 중국어 외에 한국어도 있었다. 그가 본인의 삶을 간단하게 요약해 놨는데, 그야 말로, 눈물겨운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여기서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어머니께서는 나를 낳으시다 돌아가셨다 (내 평생의 죄책감이 되어 영원한 의문으로 남은채…).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음악 교수로 재직하셨던 아버지는 나치에 의해 변두리 지방으로 추방 당하신 후 전장의 최전방으로 차출되셨다. 그리고 교전 중 총알받이로 전사하셨다. 그 뒤 나는 할머니께로 보내졌다. 1945년 1월 23일에 적의 맹습으로 피난을 떠날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1년 동안의 피난생활 뒤 할머니 역시 돌아가셨다.

12개월 후인 1946년 1월 31일, 나는 생후 5년간의 어두웠던 시간들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동안 나를 항상 따라 다녔던 질병과 죽음의 상처로 얼룩진 시간들로부터 구원해준 이는 발리도레 에셴바흐(Wallydore Eschenbach) 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촌이었고 후에 나의 양어머니가 되었다. 뒤이은 긴 1년이란 기간의 회복기를 거치는 중 (당시 나는 괴로운 일들을 겪으며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나는 처음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다. 발리도레 에셴바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성악가이며 음악 선생이었다. 그녀는 밤 늦은 시간까지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시곤 하였다. 내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수양어머니께서 내게 음악을 하고 싶은지 물으셨을 때 “네”하고 대답 하면서부터였다.

나는 내 자신을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내게 표현수단의 기능이었다. 또한 음악은 그것을 넘어 사물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어린 아이에게 단순한 흥미거리로만 전락할 수 있었던 음악에 심취 하였고 삶에 대한 갈망은 음악으로 인해 다시 깨어나 내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가 되었다. 마치 구원을 받아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발리도레 에셴바흐와 그녀의 음악(뒤에 나의 음악이 된)을 통해 나는 친어머니께 그녀가 잃어버리신 것들 중 일부를 영적으로 돌려드린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삶은 새로운 의미를 찾았으며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이후의 이야기는 ‘기획연재’란에 시리즈로 연재해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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