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1934-1970)은 논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김낙희는 논산 강경 일대에서 명의로 이름이 높은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정씨입니다. 아버지 김낙희는 면암 최익현의 학통을 이어 받은 한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김관식은 어릴 때부터 논산 인근에서 신동으로 소문이 났었다고 합니다.

1940년에 강경 중앙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때의 동창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지낸 시인 송혁이 있습니다. 김관식은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으나 한문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답니다. 그때도 김관식은 툭하면 집을 떠나 며칠씩 객지로 돌다가 돌아오곤 했답니다. 가까운 친구로 강신학이 있는데 둘은 성격이 비슷해서 함께 돌아다니며, 책도 읽었답니다. 김관식은 국민학교를 마치고 강경 상업 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그로부터 그의 기인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을 했답니다. 건듯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객지로 돌아다녔고, 그 당시 유명한 한학자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비교적 엄격했을법한 김관식의 아버지는 왠일인지 아들에 대해서 자못 방임적이었습니다. 강신학도 함께 강경상고로 진학을 했고, 시를 썼다고 합니다. 각자 쓴 시를 교환해 읽으면서 서로 천재라고 추겨세우기도 하고, 묵사발로 서로 까기도 했답니다. 또 이들은 가까울 뿐만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도 자주 했답니다. 어느 때는 공동묘지에 찾아가 밤새도록 싸우고, 새벽이 되면 서로 얼싸안고 시내로 돌아왔답니다. 그들의 우정은 김관식이 죽기 얼마전까지 지속이 됐답니다. 김관식이 어느 사기꾼을 죽이겠다고 대낮에 청용도를 메고 쳐들어 간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계획을 세우고 함께 장도리를 차고 갔던 사람이 강신학이라고 합니다. 김관식이 작고했던 해에 쓴 시를 한 편 보기로 합니다.
호피(虎皮) 위에서
김관식(1934-1970)
해 진 뒤, 몸 둘 데 있음을 신에게 감사한다!
나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하노니
자조근로사업장에서 들여온 밀가루 미(죽)이나마 연명을 하고
호랑이표 시멘트 크라푸트 종이로 바른 방바닥이라
자연 호피를 깔고
기호지세로 오연히 앉아
한미합동! 우정과 신뢰의 악수표 밀가루 포대로 호청을 한 이불일망정
행-주-좌-와가 이에서 더 편안함이 없으니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고
백악관 청와대 주어도 싫다.
G-N-P가 어떻고,
그런 신화 같은 얘기는 당분간 나에겐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1970 創作과 批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