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축제, ‘감사와 기원’을 담읍시다.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 언덕이 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다녀온 임실군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갔을 때는 계절이 쌀쌀한 늦가을이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발목을 적시며 차가운 냇물을 건넜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때, 마을 언덕에 매화 밭이 눈에 들어왔고, ‘봄철에 다시 오면 참 좋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매화꽃이 피는 철이 이른지 늦은지도 모르고 갑자기 찾아갔지만, 그것도 해거름 판에, 제 때 제대로 찾아간 것이 되었습니다. 매화꽃이 강변에 흐드러지게 피었고, 냇가에는 맑은 물이 넘쳐흘렀습니다. 냇물이 넘쳐서 징검다리는 건너지 못했지만, 마침 어떤 어르신께서 소로 밭을 갈고 계셔서, 모처럼 정겨운 장면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도 있었습니다.

강변 마을의 매화꽃 핀 언덕을 보면서 왠지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이 와서 해마다 꽃 속에 파묻혀 지내는 분들이 부럽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도 흐뭇했습니다. 지난겨울에도 언제 봄이 또 올까 싶게 춥더니, 어김없이 날씨가 풀려서 꽃이 피고 밭갈이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스란히 봄이 다시 돌아온 것이 무언가 희생을 해서 얻어진 결과처럼 여겨졌습니다. 사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 아니겠습니까. 우리보다 훨씬 추운 지방에 살았던 스트라빈스키가 왜 ‘봄의 제전’이라는 곡을 썼는지 짐작이 갈 듯도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축제란 그렇게 ‘감사하고 기원하는 것’이고, 그래야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헌책방에 가끔 들려서 책을 삽니다. 전주에 책방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지금도 들려보면 끊임없이 좋은 책들이 헐값에 나와 있습니다. 세계적인 여류 인류학자 마가릿 미드(Margaret Mead, 1901-1978)가 어린이들을 위해서 쓴 ‘사람과 사람들이 사는 곳들(People and Places, 1959)’도 단골로 다니는 책방에서 구했습니다. 그 책은 첫머리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저 산 너머 다른 골짜기, 또는 섬의 다른 쪽 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얘기로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싶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척 궁금해 합니다. 우리 사람들의 그런 본성이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다양한 문화가 융성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한 마디로 그 특징을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사람이란 존재의 특질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나타내려는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로 소위 ‘호모-시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호모-일렉투스, 호모-사피엔스, 호모-하빌리스, 호모-루덴스, 호모-파베르, 호모-로퀜스, 호모-폴리티쿠스, 호모-이코노미쿠스, 호모-릴리글로수스, 호모-아르텍스, 호모-마지쿠스, 호모-스포르티부스, 거기다가 우리나라 소설가 이문열이 어디서 끌어온 것인지, ‘호모엑세구탄스’까지 합치면 별별 주장들이 많은 셈입니다. 어떻든 그 가운데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주장이 재미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제창한 개념으로 ‘문화는 놀이이며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발달 한다.’는 견해입니다.
학설이란 한 가지 관점으로 모든 개별적인 사안까지 설명을 하려기 때문에 억지가 많지만, 그렇게 바라본다는 시각만은 매우 흥미롭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슨 반찬이든 넓은 의미로 발효식품 아니 것이 별로 없고, 그렇다면 나물도 김치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놀이 아닌 것이 없고, 제사 아닌 축제가 없다는 얘기와 비슷합니다. 축제가 놀이이고, 놀이가 축제이며, 축제가 제사이고 제사가 곧 축제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는 뜻입니다. 인류학자들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축제를 벌이거나, 집단 최면 상태에서 광란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낯선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본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가릿 미드 여사가 얘기를 끄집어냈듯이 ‘저 산 너머 다른 골짜기, 또는 섬의 다른 쪽 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본능’이 놀이와 축제를 즐기게 된 연유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 축제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놀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축제가 늘어난 까닭은 무엇보다도 ‘정치가들이 판 벌리기를 매우 좋아한다.’ 라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판을 자주 벌려야 주민들 앞에 자주 나타날 수가 있고, 그래야 선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집니다. 이제 축제를 다시 들여다보고, 무슨 축제인가, 무엇을 위한 축제인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놀이도 축제도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갑자기 늘어난 우리나라 축제의 문제점은 ‘어떤 축제들은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것 입니다. 그 축제가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해마다 허겁지겁 알맹이가 없는 난장판만 벌리는 축제라면 그만 둡시다. 몇 년이 지났어도 무슨 축제인지 정체성이 없는 축제는 예산낭비일 뿐입니다.
축제는 무언가에 대한 ‘감사와 기원’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축제를 열어서 어떤 공동체가 함께 감사하고 기원하고 즐기고자 하는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축제란 우리는 축제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동안 얻은 것에 대해서 축제를 통하여 감사하고, 또 나아가 기원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곧 축제의 목적이고 가치 아니겠습니까.
장 택 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