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구암사’는 내장사에서 백양사를 향하여 가다가, 우측으로 들어가, 영구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제시대 창건 된 역사가 아주 오래 된 사찰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순창군 복흥면에 속합니다. 백파선사와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일화는, 미당 서정주의 시도 있지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진 1: 구암사에 있는 추사가 쓴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
(고창 선운사에 있는 비석의 복제품 구암사에 세웠음)
백파 긍선(白波 亘璇 1767 – 1852)선사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선생의 얘기는 백파선사와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 – 1866)선사 사이의 논쟁에 추사가 끼어들면서 시작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가기 전, 편지를 써서 백파의 의견을 격렬하게 비난했다고 합니다. 백파선사께서는 추사의 편지에 대해 ‘반딧불이 한 마리가 수미산을 다 태우려 한다’고 하셨답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 뒤 추사가 귀양이 풀려 제주도에서 돌아 올 때, 구암사에 계셨던 백파선사에게 연락하여, 순창 ‘복흥’에서 장날 만나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때가 겨울이었던가, 눈이 많이 내려서 길이 서로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이루어지지를 않은 것입니다.

사 진 2: 원교 이광사가 쓴 ‘정와(靜窩)'(선운사에 있는 현판의 복각 임)
백파선사가 입적하시고 난 뒤, 백파의 제자들이 추사가 있던 과천의 과지정사(瓜芝精舍)에 찾아가 비문을 청했습니다. 저 때 추사가 지은 글이 선운사에 있는 ‘대기대용’의 비문입니다. 지금도 그 글씨의 원본은 구암사에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선운사에 있는비석의 모조품을 만들어 구암사에 세웠습니다.

사진 3: 구암사의 옛 모습(일본에서 구한 사진이라고 함)

사진 4: 구암사에 보관 중인 ‘월인석보’에 대한 안내문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 1915 – 2000 )선생이 그의 시에서 인용한 ‘대기대용비’에 관해서는 정호 박한영(鼎鎬 朴漢永 1870 – 1948) 선사가 등장합니다. 추사가 백파에게 ‘석전(石顚, 돌머리)’이라는 호를 남겨주었는데, 백파가 쓰지 않고 두었던 것을, 박한영 선사가 찾아서 썼다는 얘기입니다. 미당은 젊어서 서울에 올라가 박한영 선사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대선사가 시골뜨기인 미당을 사람으로 과분하게 대접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박한영 선사는 미당을 ‘대한불교전문강원’에 입학을 시켜주었는데, 미당은 조금 다니다가 말았다고 합니다.

사진 5: 현재의 구암사 외관( 처마가 보이는 건물은 ‘애연재(僾然齋)’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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