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에 가면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습니다. 벌교 출신 한창기(1936 – 1997)선생의 수집품을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한창기선생은 광주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법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용산 미 8군에서 ‘써비스사업’을 했습니다.

사진1: 한창기 선생의 유품
미군들에게 성경을 팔고 비행기표나 본국으로 보내는 물품들을 맡아서 처리하는 일이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브리태니커백과사전출판사의 임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사는 일본 동경에 있었는데, 한창기 선생이 한국에서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판매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사진 2: 석물(박물관 경내에 설치 되어 있습니다)
한창기 선생은 널찍한 사무소를 임대하고 영업사원들을 모집했습니다. 마침 한국은 산업화의 흐름을 타고 신흥 중산층들이 형성되는 시기였습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그 당시 재력과 지식을 갖춘 신분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또, 그런 판매전략으로 브리태니커는 막대한 판매실적을 올렸습니다. 한창기 선생 본인만 2000질을 넘게 팔았다고 합니다. 1970년대 초, 한참 박정희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시절이었습니다. 브리태니커를 판매한 막대한 자금은, 한국의 ‘외환관리법’에 묶여, 미국으로 송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 3: 판소리 다섯마당 전집(LP판)
이때 한창기 선생은 시카고 본사 임원들에게 ‘한국에 묶여있는 자금으로 한국 사람들을 위한 문화사업을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부정적이었던 시카고 본사의 임원들을 집요하게 설득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1976년에 창간 된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1980년 11월 폐간되었습니다. 한창기 선생은 그 직원들을 해체하는 대신, 다른 사업을 모색했습니다. 그것이 곧 판소리 다섯마당 녹음, 민중들의 삶을 다룬 단행본 제작, 전국 각 시 도 별로 인문 지리를 망라한 ‘한국의 발견’ 등을 만드는 일 등이었습니다. 그 뒤 군부에서는 ‘뿌리 깊은 나무’의 복간을 제안하는 등, 회유와 설득을 했습 니다. 한창기 선생은 그 사람들의 회유한대로 ‘뿌리 깊은 나무’를 복간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여성들을 위한 잡지 ‘샘이 깊은 물’을 새롭게 창간을 했었습니다.

사진 4: 목단문주전자

사진 5: 조선시대 민화(샘이 깊은 물 창간호 표지)

사진 6: 북(고. 상)과 벅구(소고. 하)
한창기선생이 작고한지 10년 뒤에 생전에 가까웠던 측근들이 회고담을 모아, ‘특집, 한창기’라는 단행본을 만들었습니다. 한창기 선생이 임종을 앞두고 주치의와 함께 인터콘티넨탈호텔 지하에 있는 일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슬픈 장면의 얘기도 나옵니다.

사진 7: 전통 한옥
한창기 선생이 수집한 물품은 6000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은 유족들이 낙안읍성 옆에 4000평 가량의 부지를 마련하고, 순천시에서 20여억원을 투입 우여곡절 끝에 건물을 마련하였습니다. 유품을 영구 임대 형식으로 순천시에 기증하였고, 마침내 지난 2011년 11월 21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박물관 부지에는 한국 전통의 한옥도 옮겨왔는데 영화 서편제가 촬영되었던 집이라고 합니다.

사진 8: 박물관 직원(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습니다)
한창기 선생의 컬렉션은 방대하여 한 번에 전시할 수가 없고, 시간을 두고 교체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도 몇 장의 사진을 올렸습니다만, 추후 전시된 수집품들을 설명과 함께 다시 싣도록 하겠습니다.
을하

미처 알지 못했던 고 한창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님께 하나 더 배워서 행복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감기조심하세요.
낙안읍성을 둘러 쌓은 산들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선합니다. 고향 벌교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한국의 얼이 담긴 문화재들을 보여주고 싶어하시던 고 한창기 선생님이 뜻이 이루어져서 참으로 보기좋았습니다. 그동안 절판되었던, ‘숨어사는 외톨박이 1, 2’를 사왔는데, 다시 읽어도 재밌습니다. 소장품 도록도 사진이 잘 나와서 실물을 보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낙안읍성은 가끔 지나가는데, 그런 박물관이 있음을 모르고 있었네요.
꼭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앞에까지 갔는데, 시간이 모자라 읍성만 방문하고 말았습니다. 읍성도 성벽만 한 바퀴.. 아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