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높은 산이 넓은 들 품고 있는 곳

기차를 타고 구례를 지날 때마다 차창에 보이는 섬진강과 강건너 산 밑으로 난 길이 눈에 띄었다. 강과 나란히 난 그 길을 마음속으로 언젠가 하염없이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강변길을 따라 가다가 양지바른 어느 산골짜기 마을로 들어가  그 곳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드려다보고도 싶었다.  전주에서 기차를 타니 구례는 ‘곧’이었다. 기차는 따뜻하고 승차감도 참 좋았다. 구례구에서 내려서 점심으로 민물고기잡탕을 먹고 무조건 개인택시를 탔다. 섬진강 건너편 길로 가다가 제일 큰 동네까지 가자고 했다. 그렇게 ‘유곡(楡谷)’이라는 마을에 갔다.  ‘유(楡)’는 사전을 찾아보니 느릅나무라는 뜻이었다. 유곡마을은 마을 앞이 바로 섬진강이고, 뒤로 난 골짜기가 한참 깊었다. 곳곳에 감나무들이 많았다. 감나무들이 언뜻 보면 배롱나무 같아 보였다. 겨울이면 병충들이 감나무 껍질에 기생하는데, 농약을 고압분무기로 뿌리면 껍질이 홀라당 벗겨져 감나무가 배롱나무처럼 된다는 것이다.

    구례문화원에서 발간한 도서

구례를 승용차로 다시 찾았다. 구례구 기차역에서 봤던 ‘구례를 담다’라는 책자가 생각이 나서 먼저 구례읍에 있는 문화원으로 갔다. ‘구례를 담다’라는 책은 구례문화원에서 비매품으로 제작한 일종의 홍보용 책자인데, 이호신이라는 분이 동양화 담채로 그린 그림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례읍 모습

구례문화원 한장원 사무국장님을 뵐 수가 있었다. 문화원에서 발간한 두 권의 책자를 주셨다. 한 권은 동양화로 구례의 이모저모를 그린 ‘구례를 담다’라는 책이고, 또 한 권은 ‘구례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구례의 시골 마을을 5년 동안 사진으로 담아 소개한 내용이었다.

구례읍 봉성산에 있는 봉성사

우선 문화원이 협소하여 걱정의 말씀부터 드렸다. “구례라는 지역의 문화적 자산에 비하여 문화원이 좀 초라하네요.”  “그렇습니다. 머지않아 새로운 계획이 세워질 것 같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출신 문화인들의 도움도 받아, 전람회같은 문화행사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우선 홍보책자부터 만들었습니다만, 곧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돈 많은 지방 자치단체들이 필요 이상의 규모로 짓는 각 종 건물에 비해 너무 초라한 구례문화원을 보고 마음이 않 좋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구례를 소개하는 훌륭한 책자를 만든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화엄사 입구

구례문화원을 나와 화엄사를 둘러 봤다. 화엄사가 이렇게 웅장했던가, 화엄사는 들릴 때마다 매 번 새삼 놀라게 된다. 화엄사가 웅장한 것은 앞에 마산들이라는 지리산이 품은 넓은 들이 있어서 그 만큼 각 종 물산이 어느 지역 보다도 풍성했다는 뜻 같았다. 화엄사 입구는 모습이 전혀 딴판으로 바뀌었지만 일주문은 고색창연한 옛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의창군 이광이 쓴 입구 현판

현판 글씨를 보니 숭정 9년에 의창군 이광(1589 – 1645)이 썼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의창군은 선조의 8째 아들이었고, 연산군에 의해 유배되기도 했다고 한다. 숭정 9년이면 1736년 의창군이 48세에 쓴 글씨이다. 상당한 명필로 보인다. 화엄사 대웅전의 글씨도 그의 쏨씨였다. 현판 글씨는 획이 굵고, 획과 획 사이의 간격은 좁고 일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으면서 획이 살아있으려면 보통 필력으로는 흉내도 못낸다.

각황전 모습

사 진 7 : 서 오층석탑.  각 층 탑면에 새긴 부조가 아름답다.

안내문

탑면의 부조 1

탑면의 부조 2

 

CREATOR: gd-jpeg v1.0 (using IJG JPEG v80), quality = 82?

각황전 앞 석등

  안내문

 홍매화(부분)

안내문

연기선사 공양탑

이호신 화백이 그림 가운데  화엄사(부분)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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