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선> 김상옥, ‘눈을 가만 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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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김상옥(1920 –  2004) 선생님의 시 몇 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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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思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白楊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山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 시조집 ‘草笛, 수향서헌 1947 ‘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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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화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 시조집 ‘草笛, 수향서헌 1947’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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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무님

 

이미 쉰을 밑자리 까신 그 숫되고 어지신 어무님의

귀여운 막내로 태어난 나는

다 크도록 그의 젖을 만지고 잠이 들었었다.

 

그동안 나는 푸른 꿈과 아픈 비수를 가슴에 품은 채

병든 까마귀처럼 멀리 낯선 거리를 헤매이고

때로는 동네도 없는 길에서 비를 만나기도 하였다.

 

홀연히 마음 어리고

다시금 어무님이 불현듯이 그리워

초라한 행색을 감추고 고향에 돌아오노라니

 

어느새 어무님은 저렇듯 늙으시고

내 또한 어디서 홀로 떨어져온 不良처럼

나를 낳으신 어무님은 날 외려 손아프게 두려워하시도다.

 

                                                         *시집 ‘異端의 詩, 성문사 1949 ‘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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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갓집

 

외갓집은 산 너머

늘어진 들길.

 

꼬불꼬불 산 너머

길이 멀어도,

 

길섶에는 민들레

꽃이 피는데,

 

민들레 헤고 가면

이내 갑니다.

 

                                                           *동시집 ‘석류꽃, 현대사 1952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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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包

 

이것은 보낼 수 있는 分量의 한도에서 당신을 생각하며 싸서 묶은 것입니다.

 

이것을 묶은 다음 아직 우체국의 창구에다 올려놓지 않았어도 이미 내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걸 또 끄르고 펴보기까지는 아무리 배달부의 손에서 설령 받아들었더라도 분명 이것은 당신의 것도 아닙니다.

 

쌀 때에 느낀 나의 아쉬움과 끄를 때에 얻은 당신의 반가움은 본디 이 品質과 分量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영 분석할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 이 보이지 않는 質量은 다시 지울 수 없는 消印처럼 끝내 부득이한 것입니다.

 

                                                       *시집 ‘木石의 노래, 청우 195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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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개

 

아슴푸레 잊어버렸던 일, 되살리는 것 있다.

 

월사금 못 내고 벌소제하던 일. 흑판에 백묵글씨 지우고, 지우개 털면 窓밖으로 보오얗게 백묵가루 날렸다. 오늘 이 窓밖에도 그때처럼 보오얗게 날리는 것 있다.

 

풋보리 피는 고향 산천, 아슴푸레 지우는 것 있다.

 

                                                     *시집 ‘향기 남은 가을, 상서각 198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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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親展

 

잠 깨인

희부연 창살

전생을 교신하는 새벽입니다.

 

무심도

사무치는 정성

느릅나무 연초록 속잎입니다.

 

봉한 글

점자와 같아

맘속으로 더듬어 읽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의 말, 상서각 1998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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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周邊에서

 

그것은

한 가지 질문이었다.

—두엄 곁에 핀 달개비꽃도.

 

그것은 또

애틋한 대답이었다,

—풀잎을 기는 딱정벌레도.

 

참으로

뭉클한 슬픔이었다,

—가까이 들리던 먼 귀울림!

 

                                                  *시집 ‘느티나무의 말,  상서각 1998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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