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엔 새로운 족속들이 등장했다. 이른바 ‘애프터족’이다. 바로 성형열풍이 만들어낸 인공형 인간이다. 성형열풍은 얄궂은 흐름이다. 하나의 유행이 불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드는 우리네 습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유행이라기엔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섣부른 생각일지 모르지만 망조가 아닐 수 없다. 도저히 수술밖에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는 물론 여기서 제외한다. 부정교합이라든지 악안면 이상 등 의학적인 치료와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수술 말이다.
그저 외관상 아름다움을 위해 행해지는 수술이 문제다. 숱한 젊은이들이 양악수술, 안면윤곽수술 등 위험도가 지극히 높다는 수술을 용감무쌍하게 결행한다. 그저 째고 꿰매는 간단한 수술이 아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뼈를 깎아내고 잘라내는 무시무시한 수술인데도 아랑곳 않는다. 단지 예뻐지겠다는 무지하고도 무모한 목적 하나 때문이다. 그렇게도 수술을 해야 할 절박함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하여 성형 전(before)과 후(after)가 판박이 같은 얼굴로 수렴되고 있다. 나름대로 개성있던 얼굴들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심지어 대한민국 미스코리아 출전자 20명이 한 자매 같다는 외신보도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 20명의 사진이 실려 있다. 모두 다 딱 닮은 얼굴에 비슷한 모습이다. 마치 한 사람이 옷만 바꿔 입은 것 같을 정도다. 성형수술 탓이란다. 이 모든 것이 다양성은 무시되고 한 가지 광풍에 휩쓸린 결과다. 이게 우리사회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참 모습이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인공미 없는 ‘비포’가 오히려 매력적일 때도 많다. 이런 눈, 아니 이런 미의 안목이 잘못된 걸까. 그렇다면 이런 기준을 성형해주는 곳은 없을까. 그대로 보고 있기 괴롭다.
과연 우리나라가 세계1위 성형대국이라는 현실이 흡족스러운가. 아니다. 심지어 ‘성괴’(성형괴물), ‘의란성쌍둥이’(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판박이 얼굴)라는 신조어까지 횡행하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왜 모두들 하나의 붕어빵틀 속에서 나온 붕어빵이 못 돼서 안달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예쁘다’는 말 말고는 칭찬이 아니라는 우스개도 오래됐다. ‘상냥하다’ ‘센스 있다’ ‘슬기롭다’라고 하면 찬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 칭찬인데도 그 말 앞에 ‘너는 미인은 아니지만~’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란다. 하여 그런 찬사가 오히려 험담으로 들릴 수도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미인이 아니면 행복해 질 수 없는가. 그건 결코 아니다. 미(美)에는 일정한 조건이나 절대적인 규정이 없다. 미는 추상적이며 주관적이다. 남들이 자신을 미인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어떤가. 자신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내가 예뻐지는 것이 내 눈을 즐겁게 해 주는가, 남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가. 너를 즐겁게 해주려고 뼈를 깎고 잘라내면서까지 내가 목숨을 걸어야만 되는가. 게다가 ‘미코’가 반드시 성공한 인생과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수양궁으로 불러들여 환담을 나눴다. 문득 농을 던졌다. “스님은 오늘따라 돼지같이 보이십니다.” 무학대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오늘 따라 대왕께서는 부처님같이 보입니다.” 태조는 의외란 듯이 물었다. “어째서 농을 하지 않소이까?” 무학대사가 말했다. “돼지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돼지로 보이고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자 그렇다면 내가 수가 높은가, 네가 수가 높은가. 여기서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인가.
2천년 전 무렵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는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지적했다. 참으로 적절한 통찰이다. 한 예를 보자. 2001년 2월 하와이 근해에서 미군 핵잠수함 그린발호가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심해에서 수면으로 급부상했다 힘차게 솟구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일본 어선이 바로 위에서 조업 중이었다. 북극해 유빙을 뚫을 수 있게 설계된 잠수함이었으니 어선이 두 동강 난 것은 뻔한 이치. 그린발호는 최첨단 음파탐지기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사고 직전 사령관이 규정대로 직접 잠망경까지 봤다. 어선을 못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 방향에 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보려고 하는 사물에 주의를 집중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마는 ‘주의력 착각’이다. 나는 무엇을 봤단 말인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에만 마음을 쏟은 결과다.
얼마전 비록 일부지만 5·18 정신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듯한 보도가 버젓이 방송을 탔다. <TV조선>과 <채널A> 보도였다. 그들은 탈북자의 증언임을 내세워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주장을 쏟아냈다. 북한에서 침투시킨 600명에 달하는 특수부대원들이 전남도청을 장악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보도가치에 대해 진지한 검토도 안한 채 왜 이런 소설 같은 얘기를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외려 보도라는 미명하에 역사 왜곡의 극치를 보여줬다. 게다가 소위 ‘일베’라는 인터넷 사이트는 한 술 더 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만큼 저속하고 거친 표현으로 광주의 희생 영령들과 유족들을 욕되게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이미 진상이 만천하에 밝혀지고 사실관계 정리가 끝난 분명한 ‘민주화운동’이다. 이를 아무리 인터뷰이의 언급이라고 하지만 ‘북한 특수부대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고 왜곡하는 등 보도태도가 사회적 용인의 한계를 넘어섰다.
도대체 극우 집단들은 진실은커녕 사실조차도 거부한단 말인가. 이번 사태는 보수·진보의 입장 차이도 이념 갈등도 아니다. 사실과 거짓의 대결일 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툭하면 국민들을 편 가르고 서로 반목케 하는 세력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또한 그들은 무슨 노림수를 갖고 있는지 알 길 없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패덕과 파렴치란 혹평은 면했을 것 아닌가. 단지 자신들의 주장을 강변하기 위한 보도치고는 내용이 너무 그악스럽고 저열하다. 이미 그것은 보도라기보다는 억지요 궤변이요, 현혹에 지나지 않는다. 전두환이 쿠데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장한 게 북한개입설이다. 이를 다시 들고 나온 일부 종편의 자세는 단순한 제작상의 과오로 보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보자. 보도기관(나)만 있지 수용자(너)는 없는 보도는 이미 객관적 가치를 잃었다. 그건 보도가 아니라 프로파간다(선전)나 데마고기(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어렵사리 자리 잡은 역사적 개념정의를 제대로 살리려면 역사 왜곡 세력에 대해 단호한 대책이 필요하다. 따라서 해당 종편 등에 대해 방송심의기구를 통해 엄중한 제재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군사 쿠데타 항거의 역사인 5·18 민주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일부 종편의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 행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5·18 민주항쟁은 12·12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정의로운 투쟁이었다. 쿠데타의 주인공 전두환은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며 자신의 민주항쟁 진압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내란죄로 법원의 사형 선고까지 받지 않았던가.
이런 가운데 민주당 유승희 국회의원의 물음은 매우 타당하다. 그는 묻는다 “군사 쿠데타에 대한 정의로운 투쟁을 부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폄하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어 “종편의 5·18 왜곡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위안부 망언, 침략부인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 일부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 책동과 5·18 북한개입설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부정 하려는 행태는 그 자체로 죄악이며 역사의 준엄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유의원의 따끔한 꾸지람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5·18 역사 왜곡 방송을 내보낸 일부 종편은 이번 방송에 대해 크게 뉘우쳐야 한다. 유의원의 요구대로 △국민 앞에 사죄 △책임자 엄중 문책 △역사 왜곡 방송의 기획과 편성의 경위를 철저히 밝힐 것 △역사 왜곡 방송의 재발 방지 약속도 분명하게 해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공식사과하지 않고 편법적으로 얼버무리고 어물쩍 넘어가는 태도는 떳떳한 언론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음침하게 딴 마음을 먹고 보도를 빙자해 왜장치는 사술은 이제 안 통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진정 용기있는 자세다.
사람들은 학이 춤추는 것만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한가히 서 있는 것이 더 격이 높다고 보는 밝은 눈들도 많다. 하기는 값이 싸서 스스로 품격을 내동댕이치는 보도기관들에게는 그럴만한 격도 없지만 말이다.
서시봉심(西施捧心)이란 말이 있다. 서시는 중국 춘추시대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다. 미모가 뛰어나 오나라 왕 부차의 여자가 됐다. 얼마나 예뻤는지 서자(西子)라는 높은 별칭까지 얻었다. 어떤 못생긴 여자가 서시가 가슴이 아파 가슴에 손을 대고 얼굴을 찡그린 것을 봤다. 자기도 이를 본떠 서시의 흉내를 냈더니 사람들이 추악한 얼굴 모양을 보고 놀라 달아났다는 고사다. 요즈음 무작정 남을 따라 자기 모습과 자기 신념을 바꾸려는 세태가 그 옛날 이야기를 생각게 한다. 나와 너를 분별할 줄 모르는 소치이다. <화산>

재미있게 글을 읽으면서 세태를 반영하는 새로운 용어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듣고보니 요즘 종편들이 스타워스에 나오는 ‘돌연변이 외계인들의 카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