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31> 두손 놓고 녹이나 축내는 주제에

옛말에 시위소찬(尸位素餐)이란 말이 있다. 본디 시동의 공짜밥이란 뜻이다. 한서(漢書)의 주운전(朱雲傳)에 나온다. 하지만 요새엔 하는 일 없이 국가의 녹을 축내는 정치인을 비유한 말로 더 자주 쓰인다. 옛날 중국에서는 제사지낼 때 조상의 혈통을 이은 어린아이를 조상의 신위에 앉혀 놓는 풍습이 있었다. 영혼이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려는 신앙에서 나온 풍습이었다. 이런 방식은 원시적인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조상의 영혼이 천진난만한 후손인 어린아이에게 접신(接神)하여 그 아이의 입을 통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게 한다는 발상에서 나왔을 법하다.

 

이 때 신위에 앉아 있는 아이를 시동이라고 한다. 시위(尸位)는 그 시동이 앉아 있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시동이 신위에 앉아 하는 일 없이 조상 대접을 받는다는 비판의 뜻이 담겨있다. 이처럼 아무런 능력이나 공적도 없으면서 남이 만들어 놓은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시위라고 한다. 소찬은 담담한 반찬이란 뜻으로 공짜로 먹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앉아 공짜밥이나 먹고 있다는 빈정거림의 뜻이 본질이다. 하는 일 없이 국가의 녹을 축내는 관리들이 뼈아프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아무런 재능이나 공로도 없이 녹을 타먹는다면 나라꼴이 어찌 될 터인가.

 

한나라 성제(成帝)때도 분수에 맞지 않게 높은 자리에 앉아 하는 일 없이 녹만 타먹는 허깨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 중신이었던 주운(朱雲)은 이렇게 탄식했다.

“요즘 조정의 대신들은 위로는 군주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헛되이 녹이나 축내고 있는 자들(시위소찬)일 뿐이다”

 

능력이나 공적과는 거리가 멀고 주어진 직책을 다하지도 못한 주제에 한갓 높은 관직만 차지하고 녹을 받아먹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부조리와 비능률의 밑뿌리 아니던가. 바로 이들을 자르지 않은 채 국가의 효율성과 정부의 내실을 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무 하는 것도 없는 처지에 녹만 축내는 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쓸데없이 공직감투만 크게 늘었다. 그래서 매양 ‘작은 정부’ 얘기가 나오는 거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다. 다 제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제 노릇을 할 때 제 밥값을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허우대만 멀쩡한 자들이 제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목소리는 어찌 그리 크던가.

 

때마침 안철수 대통령선거후보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자신의 정치개혁안을 내세웠다. 그러자 여야 정치인들이 나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안후보는 “그 말을 쉽게 풀어 얘기하면 ‘국민이 정치를 싫어하도록 안철수가 부추긴다’는 말이다. 그게 얼마나 교만한 생각입니까”라고 반발했다. 여기서 정치인들의 도에 넘는 이기심을 읽는다.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안후보의 “문제의 본질은 왜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게 됐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꼬집음을 곰곰 음미해봐야 한다.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치개혁안은 자기 희생이 부족하다, 말의 성찬이 있는데 진정하게 내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객관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안후보는 “정치권이 이를 바로잡으려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게 본질”이라며 “여러 가지 중 세부사항을 말씀했는데, 지엽적인 하나하나를 붙잡고 논쟁하지 마시고 본질을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더 나아가 “19대 국회의원 세비가 작년에 비해 16% 인상된 것으로 기억한다. 공무원 임금이 3.5%, 최저생계비는 3.4% 인상됐다”며 “경기가 어렵다보니 각국에서 세비 동결 또는 인하 법안이 제출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도 한참 간 것”이라고 여야간 세비 인상 담합을 질책했다.

그는 “세비가 올라서 19대 국회가 정치를 더 잘하고 있는가. 국감 때에는 ‘안철수 감사’를 했다. (제가)국정보다 더 중요한 사람인가 생각했다”며 “국정감사를 안 하신 국회의원들은 자진해서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고 세비 반납을 촉구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국회의원의 기본임무인 국정감사조차 안하고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이라면 시위에 앉아 소찬을 즐기는 특권층이라고 질타해도 할 말이 있겠는가. 그들은 자기처지를 알 리도 없을뿐더러 하물며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정수리가 붉은 단정학(丹頂鶴), 맑은 마음과 개결한 성품을 지닌 선비들이 유난스레 아끼고 가까이 하려는 새다. 단지 오래 산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고한 품성을 높이 샀다. 늘씬한 자태는 얼마나 청초한가. 유유히 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고혹적인가. 부리부터 꼬리에 이르는 몸체도 날렵하지만 쭉뻗은 다리는 비길 데 없이 곧다.

당나라 백거이는 ‘학(鶴)’이란 시에서 탄식했다. “누가 그대더러 춤을 잘 춘다고 하든가(誰謂爾能舞)/ 한가로이 서 있을 때가 훨씬 나은 것을(不如閑立時)” 아무리 학의 춤사위가 멋들어지다고 아무 데서나 함부로 날개를 펴지는 않는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내서도 안 되지만 학의 날개가 크다고 속된 춤판에 부를 건가. 그냥 서있기만 해도 학은 맵시가 난다. 더불어서 백거이의 가르침도 한 수 더 새긴다.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거니와(人有各所好)/ 사물에는 애당초 항상 옳은 것은 없거늘(物固無常宜)” 뜻 깊은 정치인이라면 학의 품성과 출처진퇴를 눈 밝게 읽어야 한다.

 

추국과 단풍이 온 산하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연보랏빛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가을정취를 재촉하고 홍색, 황색, 자색 풍엽들이 가을색을 현란히 물들이고 있다. 세상에 볼 만한 꽃들이 어찌 한 두가지뿐이겠는가. 다투어 피어나는 고운 꽃들 가운데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은 모든 꽃을 똑같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저 제 빛깔을 내는 꽃을 좋아한다.

 

조선시대 저 꼿꼿한 유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은 우리를 매섭게 가르친다. 남명은 몸이 산속에 있어도 마음은 산속에 있지 않았다. 하여 역사와 현실을 돌보는 자세를 견지했다. 단지 경서나 서책에서만 궁리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스스로도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山 看水 看人 看世)”고 한바 있다. 남명은 직접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현실의 최고선을 찾으려 끊임없이 고뇌하고 아파했다.

 

단지 자신의 명리와 출세에만 눈먼 청맹과니 정치인들은 이런 위대한 선조들에게서 배우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겉으로 내세우는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외침은 그저 공허한 헛구호에 불과하다. 부디 자신을 엄격히 돌아보라. 삿된 정치인들이여.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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