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구천동에 있는 백련사에 다녀왔습니다. 7월 4일, 장마철이어서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구천동 입구 삼공리에서 백련사까지는 6Km, 처음부터 걸어서 갈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만만하지 않는 여정이었습니다. 입구 안내판을보니, 구천동이라는 이름도 생기게 된 정확한 연유는 모른다는 것 같았습니다. 백련사도 신라때 창건 된 것은 확실하지만 역시 정확한 연대는 불분명했습니다.

장마철이라 골짜기에는 물이 넘쳐났습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15경인 월하탄은 장관이었습니다. 혼자 가까이 다가가니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옛 백련사지터 옆에 백련교가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4,5Km 쯤 되는 지점입니다. 백련교를 지나면 바로 일주문이 나타났습니다.

빗속에 우산을 받고, 대충 파인다를 보면서, 사진을 찍으려니 수평이 안맞는 장면이 꽤 있습니다. 물안개속에 보이는 일주문의 현판이 멀리에서 보기에도 유달리 눈에 띄었습니다.

누구 글씨일까. 호가, 뒷글자는 ‘허’자 같기도 한데 앞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 본듯도한 글씨였습니다. 현판이 높아서 낙관도 희미하게 보이고, 그렇게 궁금증을 가지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매월당 부도’는 지방문화재였습니다. 부도는 고색이 창연하고 모양이 예쁘고 형태도 완전했습니다. 그런데 매월당은 김시습 선생이 아니고 백련사에 계셨던 ‘매월당 설흔(梅月堂 雪欣)’ 스님이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선생의 부도는 부여 홍산 무량사에 있습니다. ‘시습(時習)’이란 이름은. 세종때 형조 참판을 지낸 학진 최치운(1390-1440) 이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과 이름이 비슷합니다.

멀리 까마득하게 천왕문이 보였습니다. 올려다 보는 시각이 경외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천왕문 글씨도 글씨도 역시 일주문과 체가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낙관을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 탄허스님. ‘탄허(呑虛)’였습니다. ‘呑’을 어떻게 저렇게도 쓰나, 하면서도 반가웠습니다.
탄허스님은 근세에 보기드문 학승이셨습니다. 김제군 만경면 대동리 출생으로 부친이 보천교의 고위간부였다고 합니다. 보천교 자금 일부를 독립자금으로 보내려고 집에 숨겼다가 밀정의 밀고로 왜경에게 적발되어 집안이 풍지박산되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속세를 떠나고자하는 당신의 뜻도 계셨겠지만, 그 당시 오대산 상원사에 계셨던 방한암스님에게로 피신을 가셨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화루(雨花樓) 글씨도 탄허 스님이 쓰셨습니다. 우화루는 봄비에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말 자체로도 무척 쓸쓸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떠오릅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해서 대중법회를 여는 큰 건물을 ‘우화루(雨花樓)’라 부르고 있습니다.

글씨가 날카롭고 활기가 번뜩입니다. 백양사에 계셨던 서옹(西翁) 스님 글씨도 비슷합니다만, 탄허 스님 글씨보다 훨씬 부드럽습니다. 법문도 마찬가지 같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탄허 스님은 확신에 차서 ‘꼭 그렇게 해야 된다’라고 하셨다면, 서옹 스님께서는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라는 투로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대웅전 모습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대웅전 현판은 한석봉 글씨로 유명합니다. 주련은 역시 탄허 스님이 쓰셨습니다. 주련을 읽자니 여러군데에서 막힙니다. 언제 다시 읽어 보려고 사진을 올려 둡니다.




대웅전 왼편에 약수가 있었습니다. 오래 된 멧돌이 장식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그냥 장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백련사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앞 봉우리는 해발 1200m 쯤 됩니다. 백련사 뒤 주봉인 덕유산(향적봉)이 해발 1614m 입니다. 1980년대 초반, 지금부터 30년 전에도, 이 자리에서 저 산을 바라봤었습니다. 세월이란 자신을 비춰보는 맑은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는 이른 봄. 기억이 맞다면, 저 왼 편에 하얀 목련이 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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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에 우리 과 학생들도 거기 근처에 다녀 왔습니다. 아침 일찍 백련사 까지 구보든 산책이든 하라고 학회장에게 시켜 놓았는데, 저녁 늦게까지 마신 술이 아침에 갑자기 깰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