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의 ‘저녁눈’에서 ‘말집’이 뭡니까?

박용래의 시 ‘저녁눈’에 나오는 ‘말집’이 궁금했었습니다. (박용래 시인의 시집을 낼때 박용래 시인의 사모님 의견을 쫓아서 ‘싸락눈’으로 제목을 바꿨다고 합니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조랑말 말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저녁눈’ 전문)

엊그제, 7월 4일, 무주구천동 백련사에 다녀와서 사진을 <가족신문.kr>에 올리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에 설명을 덧 붙이고자 참고했던 <뿌리깊은 나무>의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 사람’시리즈(1987년 제4판)에서 ‘말집 사진’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진은 ‘전라북도’편 무주군/관광지 개발로 어수선해진 구천동(P125)에 있었습니다. 사진 옆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었습니다.

“나라안에서 고작 몇 채밖에 남지 않은 말집((동아일보 출판 사진부 사진). 말집은 이 군에서만 볼 수있는, 귀틀집과 초가집을 절충한 집이다.”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말집’는 ‘말(斗)과 같은 집’ 같습니다. 말(斗)의 모양이 문제입니다. 관인이 찍힌 말(斗)은 둥글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판자로 되를 만들어 썼듯이, 말도 직육면체 모양으로 만들어 썼다고 보여집니다. 직육면체 모양의 귀틀집에 초가를 얹은 모습이 그와같은 말 같았을 것입니다.

박시인의 고향이 강경인 점을 고려하면 말집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강경과 같은 평야지대에 나무를 쌓아만든 작은 귀틀집형태의 초가집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대신 평야지대에서도 늦가을이면 어떤 초가집은 처마 밑으로 뺑뺑 둘러서 수수대기로 나래를 엮어서 둘렀습니다. 출입구인 봉당 부분만 빤하게 뚫어놓고 거적으로 막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꼭 둥근 모양의 ‘말(斗)’과 닮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박용래 시인은 작은 직육면체모양에 초가를 얹은 모양을 지칭한 것이 아니고, 수수대로 처마를 두른 집을 ‘말집’이라고 그린 것 같습니다.

모난 말이든 둥근말이든, 어느 쪽이든, 가난한 초가집의 초겨울 풍경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추기> 몇 년 전에 박용래 평전이 출간되고  산문집도 나왔습니다. 거기를 보면 대전으로 이사가서 박용래시인이 살던 집 뒷쪽으로 실제 말을 키우던 집이 있었답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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