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엠> 석등은 옛날 실제로 불을 밝혔을까요?

 

석등이 생각이 났습니다. 강가에 나룻터가 있고, 가까이에 석등 하나만 남은 오래 된 절터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가 봤던 곳이지만 가는 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가보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갑자기 석등이 생각난 것은 엊그제 옥정호에서 배를 대던 두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있고, 한 사람은 물가에서 배를 탄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무슨 긴 이야기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고향을 떠나려는 사람일 수도 있고, 오랫만에 고향에 찾아온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마중나온 사람은 어느 경우나 한 사람. 어디에서 돌아오는 사람인지, 어디까지 떠날 사람인지. 다시 돌아올 사람인지, 또 다시 떠날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오래 된 절터에 남아있는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석등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 석등은 언제쯤 실제로 불을 밝혔을까?”하는 의문이 났습니다. “석등이 불을 밝혔다면 그것은 무슨 염원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등불은 어디까지 비쳤을까. 불이 켜졌다는 것 뿐이지, 그리 멀리 비치지는 못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석등은 한 번도 아예 불을 켜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떠나온 동네에 석등이 있었다는 것. 떠나야할 고향에 석등이 남았다는 것.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석등의 밝기가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름내 학자스민 넝쿨순이 중력을 거스르는 것을 봤습니다. 나무가지를 타고 올라간 넝쿨순 끄트머리는, 바람에 흔들면서도, 닿을 데가 없은 허공을 헤멨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에 떠있다는 것, 저것이 무슨 힘일까, 안쓰러웠습니다.

 

지구와 같이 조그만 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희미한 빛으로는 우주의 끝까지 밝힐수는 없습니다. 단지 미미한 중력으로 멀리까지 그 존재와 영향력을  나타낼뿐입니다.

 

석등도 그렇습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심리적으로 어떤 중력과 같은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고향을 떠나고 싶은 것이 원심력이라면,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구심력도 있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관광버스로 유적지를 답사하려고 ‘진구사지’를 찾아왔습니다. 가까이 가서 인솔하는 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대학생들은 아니었고, 평생교육원생 같지도 않고, 모임의 성격이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든, 설명이 다 끝날 무렵, 인솔하는 분께 여쭤봤습니다.

 

“석등이 옛날에 실제로 불을 밝히는데 쓰였습니까?”

“그럼요. 지리산 실상사 가보셨습니까? 거기 가면 올라가서 불을 켜는 돌로 만든 계단이 있습니다. 잘 보시면 사창을 단 구멍들도 있습니다.”

“비단으로 바람을 막았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실상사에 가면 석등이 불을 밝히는데 사용되었다는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 나도 기억이 났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아서 제목을 ‘석등’이라 붙여서 몇 자 썼습니다.

 

 

석등

 

떠나는 사람,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사람,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허공에 떠서 흔들리는 넝쿨처럼,

어디 낯선 곳에 닿고 싶을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떠난 친구를 생각하는 것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석등이 불을 밝혔든 밝히지 않았든 어떻습니까.

불빛보다 더 멀리 비치는 것이 기억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닿는 곳이 어디면 좋겠습니까.

우리를 그리워하는 곳 아니겠습니까.

 

석등은 불을 밝히고있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아득히 먼 곳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2013. 10. 14)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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