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 45> 소금쟁이는 물 위를 걷는다

전주 한옥마을에는 국악방송국이 있다. 거기엔 소담한 연못이 자리해 정취를 돋운다. 무성하지 않은 수련이 차분하다. 때맞춰 ‘금구의 금을 일어 쌓인 게 김제로다. 농사하면 옥구백성 임피사의 둘러 입고’ 호남가 한 대목이 구성지게 흐르면서 꽤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연못에 소금쟁이가 살고 있었다. 물 위를 사뿐사뿐 떠다니는 소금쟁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닌 밤중에 웬 소금쟁이 타령인가. 조금은 객쩍다. 허나 세월이 하 엉망이니 논자가 오죽하면 소금쟁이까지 끌어들일까.

소금쟁이가 물에 뜨는 이유는 여럿이다. 표면장력, 영점 몇 그램의 가벼운 몸무게, 물에 젖지 않는 다리의 구조 등등. 허나 무엇보다 욕심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낱 벌레에게 무슨 욕심같은 게 있으랴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세상의 욕심 많은 사람들이 부디 소금쟁이의 날듯이 가벼운 걸음걸이를 한번쯤 살핀다면 어떨까 싶다. 하기는 욕심이란 것이 끝도 없는 것인데 자연에서 얻는 이치를 교훈 삼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욕심에 관한 이런 이야기도 있다.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예순 살 동갑내기 부부가 있었다. 결혼기념일에 천사가 나타나서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내가 먼저 소원을 말했다. “그동안 워낙 가난하게 살다보니 여행을 못했어요. 세계일주 여행을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군요.” 그러자 천사가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건네줬다. 소원을 말하자마자 이뤄지는 것을 지켜본 남편이 아내의 눈치를 슬슬 살피더니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보다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천사는 고민했다. “그동안 두 분이 열심히 살아서 드리는 혜택인데 소원을 안 들어 드릴 수도 없고 아무튼 그렇게 원하신다면 이뤄드려야겠지만 그러나 참 이상한 소원도 다 있군요.” 천사는 남편의 소원을 들어줬다. 그런데 예쁜 새댁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편이 그만 폭삭 늙어 아흔 살 노인이 돼버렸다. 분수를 모르는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욕심도 문제지만 터무니없는 걱정도 크나큰 사슬이다.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취를 싫어하여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달아난 어떤 사람이 있었다. 장자에 나오는 우화다. 그는 자기 그림자와 발자취를 떨쳐내겠다고 결심했다.

“좋은 수가 생각났어. 그림자와 발자취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나는 거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잦아들수록 발자취가 많아지며 달리는 것이 빨라질수록 그림자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 걸음이 아직 더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쉬지 않고 질주했다. 그러나 힘이 다해 그만 죽고 말았다. 그는 그늘에 있으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가만히 멈춰 있으면 발자취가 사라진다는 간단한 이치를 몰랐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였다.

장자의 우화 속 어리석은 그처럼 덜 트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세상엔 적지 않다. 우리 동네 김씨 이씨라면 뭐 그다지 탓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면 좀 달라져야 한다. 내 눈이 밝지 못하다면 마음이 맑고 선량한 현인들을 가까이 해야 할 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끼리끼리 만나서 제 잇속만 셈하고 웃고 떠들며 희희낙락한다. 세상의 어지러움과 이웃의 쓰라림이 대수냐는 듯 아랑곳 않는다.

따져보면 그림자는 내가 아니면서 또 다른 나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허울뿐인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밖엔 없다. 다시말해 껍데기의 나를 버리면 참모습의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이치는 간단하다. 허나 참나를 찾기 위해 어떤 이는 평생을 수도자로 지낸다. 어떤 이는 단칼로 자신의 팔뚝을 잘라낸다.

자 지금, 평범한 세인들의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줘야 할 가장 큰 책무가 누구에게 있는가. 고매한 종교적 지도자인가. 따스한 마음씨를 나눠주는 멘토들인가. 아니다. 헌법상 가장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다.

난맥을 보이는 국정과 혼란스런 사회의 책임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나 정치역학 구조로 봐서도 맨 앞에 책임을 물어야 할 이는 바로 대통령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대통령은 책임의 책자도 뻥긋 않는다. 오로지 자기 치장, 낯내기에만 신경 쓸 따름이다. 지치고 기력이 쇠잔해가는 국민들에 대한 진심어린 송구함이나 마음의 위로같은 것은 도무지 안중에 없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만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할 수 있다. 사죄나 사과는 지도력에 흠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보다 깊은 믿음과 공감을 불러 일으켜 더 단단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는 참으로 가관이다. 자고 나면 안전사고요, 인명 피해 소식인데 도대체 국가는 무엇하는 건가. 국가가 국민들을 감싸고 지켜주며 따뜻이 품어주는 게 마땅한 일 아닌가.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민이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이며 도리어 국가를 걱정해주는 시절이 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 정치인이거나 오로지 나뿐이라는 오기와 고집의 화신임에 틀림없다. 총리후보자 둘, 장관 후보자 여럿이 물러나는 최악의 인사를 했고 아직도 다 마무리짓지 못했다. 그러고서도 검증과 인선의 잘못은 인정 않고 여론재판이나 제도 탓만 한다. 내 탓이고 내 책임이라는 소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오만하고 위험한 태도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권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모든 건 전적으로 내 탓’이라고 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참 답답하다”고 비판한다. 정홍원 총리가 임명제청권자로서 사과를 했으니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인가.

박 대통령의 책임회피는 뻔하다. 내게 따라다니는 비판과 비난이라는 그림자 때문이다. 그 그림자를 떨쳐내려면 자기를 버려야 한다. 옹졸하고 못나 빠진 자기를 버리면 크나큰 자기를 새로 얻는다. 이 간단한 셈법을 아직도 모를 리 없건만 왜 아직도 그 쬐끄마한 자기에 집착하는지. 내 사람만 챙기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는 영영 크나큰 장벽을 쌓고 살게 된다.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심화되고 혼란이 지속되는 걸 방치할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정홍원 총리 유임을 결정했다”는 친절한 설명은 청와대 회의용일 뿐이다. 상처받고 신음하는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말은 진정 아니다. 박 대통령은 ‘공백, 분열, 혼란’ 즉 인사참사 원인으로 여론 재판과 높아진 검증 기준을 지목했다. 그것은 원인을 찾으려는 자세가 아니라 핑계거리일 따름이다. 부적격 인물을 낙점한 것에 대해 최종 인사권자로서 성찰이나 사과의 말도 전혀 없다.

정 총리가 복귀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는가. 참사에 대해 대통령 대신 책임지고 물러난 총리더러 어떻게 쇄신을 맡기고 혁신을 주문한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예고했던 인적쇄신과 정부 부실 대응에 대한 책임 문제는 어찌 풀겠다는 것인지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우선 눈앞의 도랑만 건너면 더 큰 강물은 무슨 방도로 건너겠다는 것인가. 그러니 구렁이 담 넘기요 언 발에 오줌 누기 아니냔 얘기다.

조금만 더 거슬러 가보자. 비정상의 정상화, 통일대박에다 창조경제가 다 뭣인가. 어디서 해괴하고 개념 정립도 안 된 새똥 빠진 낱말 몇 개를 주워 모아 나라를 이끌겠다는 슬로건으로 내세우다니 우습다 못해 신통하다. 국무위원들조차 설명을 잘 못하는 생경하고 신기한 용어들 아닌가. 여기서 정명론(正名論)은 차라리 얘기하지 말자. 그러니 국정아젠다가 제대로 설리 만무하다.

현실의 과제는 무겁고 한반도의 분위기는 엄중한데 1년 반이 넘도록 국정은 표류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국가개조라니 누가 무엇을 개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요즘 같아서는 대관절 정의가 무엇이고 불의는 또 무엇인지 헷갈린다. 또 진실과 거짓, 진심과 가식은 어떻게 가려야 하는가. 옥과 돌을 가려야 하는데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다. 어지러워 멀미가 날 지경이다.

다시 거론하기조차 민망한 수법과 행태들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나왔다. 한심의 수준을 넘어 이것이 현실인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교수출신의 김명수 사회부총리후보를 보자. 기득권은 다 누려놓고도 극심한 경쟁과 불투명한 앞날에 좌절하는 제자들의 처지를 헤아려보기나 했을까. 제자 논문 표절, 수당 가로채기, 칼럼 원고 대필 등 유치찬란하다. 과연 양심을 걸고 제자들 앞에 설 수 있을지 진정으로 돌아보기 바란다.

정성근 문화체육장관 후보는 또 어떤가. 음주운전에 위증에 폭탄주 회식에 여성문제까지 화려무쌍하다. 이처럼 파렴치한 과거를 두고도 관행이라거나 오해라는 낯뜨거운 변명으로 어물쩍 포장하려는 꼴들을 어느 국민이 묵과할 지 말문이 막힌다.

공무원의 업무와 관련된 뇌물도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니 눈감아야 하는가. 위장전입도, 탈세도, 군복무기간의 학위취득, 더구나 교수의 논문 표절조차 관행이었다면 과연 우리사회의 관행은 얼마나 넓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안될 지경이다. 그 넓고도 뿌리깊은 악습이 걷어내야할 적폐 아닌가 말이다.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얘기는 새삼스러우니 접어두자.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한들 제 한 몸 바르게 닦지도 못한 사람들이 국무위원으로서 활동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공직의 주요 덕목 가운데 청렴과 양심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깨끗하지도 진실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요직을 맡길만큼 한가로운 나라는 아니다. 인재를 찾는데 내 울타리에서만 찾으려다 보니 그리 된다. 내 욕심을 버리면 큰 나를 얻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름과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게 정치지도자다. 국민들에게는 자존심과 명예도 없는 줄 알면 계산착오다. 국정책임자는 국민들의 울분을 제대로 읽고 더 이상 절망 속에 빠뜨리지 않도록 바짝 긴장해야한다. 그런 소명감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제대로 알기 바란다.

우리는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 든다. 하지만 허다한 진실들 가운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 얄팍한 식견에만 의존하는 사이 너무 많은 진실을 놓치기 십상이다. 하여 혜안을 키우고 통찰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애쓰는 것 아닌가. 뿐만 아니라 때로는 믿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국민이나 위정자나 마찬가지다. 달구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달구지에 채찍질을 해야 하는가, 소에 채찍질을 해야 하는가. <화산>

This Post Has One Comment

  1. 박천배

    저도 한국이 망할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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