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마애불,비급 봤답니다.

선운사에 갔습니다.  꽃무릇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지만, 가을이 오고 있는 산사의 정취가 좋았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쉬엄쉬엄 도솔암까지 올라갔습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고려시대 그 지방 호족들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마애불은 무덤덤한 표정이었습니다. 반기시는 얼굴인지, 아니면 그저그렇다는 것인지,  얼굴 표정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덤덤한 미륵부처님의 표정 때문에 안타까워했을까요. 동학혁명 때에도 그랬을 겁니다.  마애불 복장감실에 무슨 비급이 들어 있다는 얘기가 있었지요.  민중들의 기대가 컸을 것입니다. 어수선한 풍설을 듣고 전라감사 이서구가 감실을 열어 봤답니다. 1820년의 일이랍니다. 무슨 책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벼락이 치는 바람에 ‘이서구가 열어 볼 것이다’라는 구절만 보고 무서워서 도로 넣었다는 얘얘기가 있습니다.

그 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때가 1892년, 동학꾼들이 손화중의 집에 모여 비급을 꺼내서 내용을 보자고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 혁명이 성공할 것인지가 궁금했겠지요. 하여튼 비급은 손화중 수중에 들어갔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몇 달 사이에 수 만명의 사람들이 손화중의 동학포에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비급을 훔친 일로 수 백명이 무장현에 잡혀갔고, 주모자 세 명은 사형을 받았답니다. 그렇다면 비급은 과연 있었을 까요.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 것을 보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불경과 시주자 명단과 범어로 쓰인 진언 등등이 나왔을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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