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건륭황제의 ‘삼희당’과 보물 글씨첩

중국의 건륭황제(1711-1799)은 25세에 즉위, 60년 동안 재위했다. 서예를 비롯하여 예술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에 7만권이 넘은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방대한 백과사전을 편찬케 했다.

중국에서 발간 된 ‘자금성제후생활’이라는 사진집이 있다. 내용은 자금성에서의 역대 황제와 황후들의 생활 모습을 담았다.  사진 가운데 건륭황제의 조그만한 개인 서실 사진이 있었다. 당호 이름은 ‘삼희당(三希堂)’.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한 곳이라는 뜻이다. 건륭황제의 세 가지 보물은 서예작품이었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왕헌지(王獻之)의 ‘중추첩(中秋帖)’, 왕순(王珣)의 ‘백원첩(伯遠帖)’이다. 건륭황제가 제일 애지중지한 것은 왕희지의 글씨였다. 왕희지의 ‘쾌설시청첩’은 대설이 내린 다음에 날씨가 화창하게 개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인 ‘산음장후(山陰張侯)’의 안부가 궁금해 그 심경을 전하고자 쓴 서간문이다. 재질은 마(麻)이고 가로 14.8cm, 세로 23cm의 크기에 4행의 행서로 총 28자를 썼다고 한다. ‘삼희당’ 당호 아래 대련의 내용이 의미 심장하다. ‘회포관고금(懷抱觀古今), 심심탁호소(深心託豪素)’. 대충 말하면, ‘고금은 보고 안고 품으며, 깊은 마음을 호방과 깨끗함에 맡긴다’ 라고 할까. 첫 귀절은 박학한 학자로서의 염원이고 댓귀는 황제로서 통치 자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건륭황제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해맑고 영특한 재주를 지닌듯한 얼굴이다. 황제가 그렇게 예술을 깊이 사랑하고 즐겼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에도 모름지기 그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나라에서는 어려울 것 같고, 혹시 프랑스라면 가능할까 생각해 봤다.

 

을하

 

 

This Post Has One Comment

  1. 이강록

    이런 희귀한 자료는 백과사전에서도 찾기 어려운 소중한 내용이네요. 친절한 소개, 참으로 고맙습니다.

    인문을 사랑하시는 을하선생님의 마음에 머리숙여 경의를 보냅니다.

    화산올림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