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이 뒤숭숭 하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공주에서 대학에 다닐 때 ‘대불련(대학생불교연합회)’이라는 모임에 가끔 나갔다. 그 지도교수님은 사회교육과 김영묵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은 경상북도 상주가 고향이시고, 형제로는 고려대학교 김영두 교수님이 형, 성균관 대학교 김구용 교수님이 동생이셨다. 교수님 댁에 가면 서재에 김구용 시인께서 붓으로 쓰신 금강경이 두 구절 있었다.
“법상응사 하황비법(法尙應捨何况非法)”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법을 뗏목에 비유하여, 물에 빠진 사람이 뗏목으로 목숨을 구했더라도 뭍에 이르면 그 뗏목을 벗어나야 한다. 불법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을 얻으면 불법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보다 못한 것이면 어떻겠느냐?”
“마땅히 머므는 바가 없는 데에서 나는 마음이 바로 불심이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갖는 오류 가운데는 가치관의 고착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다시 말하면, 한 가지 가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금강경에 나오는, 그 ‘뗏목의 비유’가 절실하다. 자기가 갖고 있는 현재의 가치관으로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교만하고 무모한 짓인가를 알지도 못 한다.
“IS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될 조짐이다. 세계 60개국을 이슬람의 적으로 선포했다고 한다. 이슬람의 적이 아니고, 몇 명의 IS 극렬분자들이 생각하는 적이겠지만, 얼마나 위험하고 편협된 논리인가. 편협된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 시대를 함께 사는 한 사람으로서 끔찍하다.
저간에 우리 나라가 처한 상황도 만만하지가 않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요구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는 목숨을 걸고 외치는 절박한 소리도 있다. 절박함이 절박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 상태란 말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근본적인 질문부터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시대의 꿈이 무엇인가.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민주화의 꽃을 피우고, 민주화의 무르익은 열매를 따먹어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삶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는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기만이 옳다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일 나뿐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된다. 그 사람이 누가 됐든.

금강경의 두 구절이 마음에 와닿네요. 항상 저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