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땅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어릴 때 기억은 왜 그렇게 생생한지 모르겠습니다. 익산군 춘포면 용연리 판문. 고향이라고, 산도 없고, 만경강 대보뚝을 끼고 있는 밋밋한 동네였습니다만, 지금도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있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눈앞에 선명합니다. 창의적인 교육이 중요하고, 놀이문화가 어떻다는 얘기를 교육현장에서 듣습니다만, 그럴 때 마다 저는 고향에서 참연을 만들고, 팽이를 치고 말잠자리를 잡던 생각이 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어떻고,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같은 책을 읽을 때에도, ‘진지꽃이 노랗게 핀 긴 만경강 대보뚝과, 대보뚝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떠오곤 합니다. 저는 고향이 여기서 얼마 되지도 않고, 가끔 그 곁을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고향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무엇이 약간 기우는 듯, 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겨우 아홉 살 열 살까지 밖에 살지 않은 고향인데, 그 기억이 삶의 원동력이 되고 구심력이 되어서 이끄는 것 같습니다.
봄이면 어디에서 흘러내려오는지, 냇가에 맑은 물이 철철 넘쳤습니다. 물속에 가는 띠 모양의 물풀이 춤추는 것이 훤히 다 보였습니다. 그런 여러 물풀들 가운데 ‘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간장에 무쳐서 반찬으로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일종의 ‘민물 김무침’인 셈입니다. 여름이 되면 우선 온 몸이 껄끄러운 느낌부터가 기억납니다. 여기저기서 보리타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민대’라고 아십니까. 풋보리모가지를 뽑아서 모닥불에 태우듯 익힙니다. 뜨거울 때 보리 모가지를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 껍데기를 입으로 불어내면, 푸른 구슬같이 빛나는 통통한 보리알갱이들이 남습니다. 그 따끈하고 구수한 ‘민대’의 맛이 아직도 기억이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때는 지금보다 기후가 가물었던지, 대보뚝 사이에 낀 만경강변에는, 고향에서는 ‘강속’이라고 불렀습니다만, 호밀을 자주 심었습니다. 초여름이면 입안에 호밀수제비의 그 미끈거리는 감촉이 되살아납니다. 호밀수제비는 어찌 입안에서 미꾸라지가 왔다 갔다 하듯 씹으면 이빨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은 친구와 ‘푱’이라는 글자가 있는가, 없는가, 주장이 엇갈렸습니다. 저는 “그런 글자는 없다”고 우겼습니다. 옥근이라는 친구는 먼지가 풀풀 나는 신작로에 책포를 펼치고 국어책을 뒤적거리며 찾았습니다. “여기 있잖아, 샘물이 솟는다. 푱푱푱” “아니, 그건 글자도 아닌데, 있네.” 지금도 사람의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익산-삼례간은 국도인데도, 그 때는 차가 오가는 것을 구경하기 힘들었습니다. 친구끼리 깨끼 손가락을 걸치고 약속을 합니다. “누구든 차를 먼저 본 사람에게 절을 하기”였습니다. 트럭이든 버스든 ‘땅차’든, “저기, 차다!”하면 무조건 절을 꾸벅 해야 했었습니다. 꼬리를 달지 않고 똑바로 나르는 참연은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나무살을 깎고 방줄을 맞춰서 제대로 만들려면 뛰어난 손재주가 있어야 합니다. 참연을 만드는 대나무는 부서진 비닐우산대를 썼습니다. 종이는 어쩌다 일 년에 한 번 문을 바르고 남은 창호지가 있으면 좋았습니다.
무슨 선거가 있으면 어른들은 모정에 모이셨습니다. 동네에 하나뿐인 전축을 모정에 설치해 놓고 함께 모여서 선거방송을 들으셨던 것입니다. ‘소선규’가 어떻고, ‘김성철’이가 어떻고, 그런 이름들이 기억이 납니다. 어느 해이던가, 장마철에, 만경강에 큰 홍수가 나서 뚝방까지 물이 차고, 돼지가 떠내려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강물을 보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다, “어데서 흘러오는지”, “돼지가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보다도, “어데서 떠내려 오는지”가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뉘는 모양입니다. 불란서 영화 ‘쉘브르의 우산’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처럼, 먼 바다로 떠나려는 사람이 있고, 강물이 흘러오는 곳을 찾아, 골짜기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우리 고향의 친구들도 하나씩 둘씩 떠났습니다. 지금쯤 어떤 친구는 어디 먼 항구로 헤매는지, 아니면 어느 골짜기로 숨었는지, 그립고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걷는 길을 따라서 냇가가 나란히 흐르면 기분이 좋습니다. 법정 스님도 ‘냇물을 따라 가라(隨流去)’라며, 무슨 말씀을 하셨지만, 냇가의 흐르는 물을 더불어서 걸으면 마음이 저절로 흐뭇해집니다. 예를 들어, 백담사 가는 길이 그랬습니다. 수량도 제법 풍부해서 콸콸 흐르는 곳도 있고, 흐름이 시원시원해서 그런 길을 따라 걸으면 기분이 철철 넘치는 것 같습니다. 냇물이 작으면 아기자기해서 그야말로 데리고 놀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완주군 화산면 승치, ‘되재’ 성당 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길을 걷다가 생각나면 내려가 손을 씻을 수도 있고, 정겹습니다. 고은 시인이 군산대학교에서 특강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군산에서 전주까지 차로 모셨는데, 만경 청하에서부터 삼례 비비정까지, 만경강 뚝방길을 따라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뛸 듯이 좋아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고은 시인의 고향은 옥구군 미면입니다. 만경강 하구, 하제포구가 가깝습니다. 만경강이 흘러오는, 상류 쪽으로 뚝방을 타고 더듬어 올라오는 길이 감개무량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운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그립다고 했습니다. 근정 조두현(1925-1989) 시인은 고향이 완주 비봉이십니다. 익산 남성고등학교와 원광대학교에 오래 계셨습니다. 평생 고향 가까이 사시면서도, 그렇게 그리우셨던지, ‘고향’이라는 시를 남기셨습니다.
무슨 선물을 가지고/고향에 갈까.//가지고 갈 선물이 없어서/고향엘 못 간다냐.//고향이 따로 있다냐/여기도 떠나면 고향이지.//고향을 떠나서 늙었지야/머리터럭이 백발로 희었지야.//늙으면 고향에 가고 싶지야/죽어서 고향에 묻히고 싶지야.//천호산 밑 ‘다리실’까지는/아직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단다.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