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을 햇살에 과일은 단맛이 듭니다



    <칼럼>가을 햇살에 과일은 단맛이 듭니다.

 

초가을 햇살이 따갑습니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에, 산에 들에,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갑니다. 오래 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표현은 이국적이지만, 우리도 짐작이 가는 풍경입니다. 우리는 이 무렵, 벼가 누렇게 익고, 수수모가지가 축 쳐지고, 감이 빨갛게 물듭니다. 서리를 맞으면, 땡감도 드디어 단맛이 들기 시작합니다.

온갖 곡식이나 과일들은 마지막 늦은 햇살에 단맛이 스미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해 늦가을, 경남 거창을 지나다가 과수원에 사과를 따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을 보았습니다. 일교차가 큰 산골 기후와 늦가을 햇살로 사과의 당도를 높이려는 것 같았습니다. 대추나무는 봄에 늦게 싹이 나서 가을까지 계속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들이 각각 익는 시차가 큽니다. 먼저 맺힌 열매는 익어서 터져 ‘열과’가 되는데, 새로 맺히는 열매도 함께 달려 있습니다. 익은 대추는 당도가 어느 과일 보다도 높습니다. 감이나 밤도 늦가을 서리를 맞고 팍 커지면서 단맛이 듭니다. 배추 무 고구마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과일처럼, 삶의 향기가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철학이나 인품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나름대로 내공 같은 것이 쌓입니다. 어느 시인은 오동나무 꽃을 보면, 죽은 누이 생각도 나고, 잘못이 뉘우쳐진다고 했습니다. 누구는 모과나무 옹이 마다 사연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뒤돌아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음악가도 자기가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한참을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을 드려다 보려면 꽤 많은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땡감의 떫은맛이 단맛으로 바뀌듯, 사람도 숙성이 필요하고, 그것이 곧 ‘삶의 향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군산대학교 미술학과 박종대(1943-2011)교수님은 고향이 운주 화암사 입구 마을입니다. 교수님께 어떤 감이 제일 맛이 좋으냐고 여쭈어 본 적이 있습니다. “땡감이 익으면 맛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밖의 답변이셨습니다. 저는 단감이 제일 맛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단감나무만 심었고, 감이라면 단연 단감이 최고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지 꽤 오랜 뒤에서야, 땡감이 맛있고, 왜 시골에 가면 땡감나무가 많은지 이해가 됐습니다. 얼마 전 대야 장날, 묘목을 파는 분에게서 ‘두리시’나 심으시라는 추천을 받았습니다. 새삼 “땡감이 익으면 맛있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늦가을이면, 우리 집은, 곶감을 몇 접 깎습니다. 일부러 완주 운주에 장날 가서 ‘두리시’를 사옵니다. 동상에 ‘고종시’는 씨가 없어서 좋습니다만, 당도는 운주의 ‘두리시’가 더 낫다고 합니다. 곶감은 깎는 칼이 따로 있습니다. 칼날이 짧고, 칼끝이 안쪽으로 약간 휘었습니다. 감은 꼭지부터 깎는데, 칼날 끝이 안쪽으로 휘어서 꼭지를 도려내는데 편리합니다. 천천히 깎아도 한 시간이면 한 접은 깎습니다. 둘이 앉아서 두어 시간이면 서너 접은 금방입니다. 곶감은 ‘반시’일 때가 참 맛있습니다. 깎은 감은 한 달가량 말리면 ‘반시’가 됩니다. 단맛이 대단합니다. 꿀처럼 달면서, 꿀보다 더 맛이 있습니다.

대학 마다 평생교육원이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각 대학의 안내서를 보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강좌들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풍수지리를 비롯하여, 각종 악기 컴퓨터 서예 스포츠댄스 등등, 물론 입학은 노소 불문이고, ‘대학 속의 다른 대학’ 입니다. 또 요즘 갑자기 TV의 여성프로 같은 데에서 ‘로망’이라는 말이 뜹니다. 무슨 뜻으로 쓰이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멋있게 들립니다. 원래 뜻이야 어떻든, 문맥으로 보면, ‘무언가 갖고 싶은 꿈’ 정도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평생교육원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은 우리들의 ‘로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현 시키고 싶은 ‘꿈’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은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될지,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삶이란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한 굽이를 돌아가면 한 굽이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산에 꽉 막혀 끊어질듯하다가 다시 길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왜, ‘인생행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뒤돌아보면 제법 먼 옛일도 생각납니다. “아, 그때 참 큰일이었지.”하고 수 없이 되짚어집니다. 계절 탓인가, 자성의 시간이 늘어갑니다. 세월이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하고, 머뭇거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칭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음악회에도 가셔서 무슨 음악인지 알아도 보고, 온몸으로 박수를 쳐 주셔야 합니다. 언제 전람회장에도 들리셔서, 작품에 담긴 뜻과 아름다움에 감탄을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을 햇살에 과일들이 스스로를 자양으로 가득 채우듯이, 아름다움을 보면, 우리들의 마음은 찬탄과 경외로 가득해야 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뛰어나든지, 아니면 뛰어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든지” 어느 한 쪽입니다. 느끼게 될 즐거움은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십니까.

                                                    장택상/군산대학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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