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을 에센 바하가 지휘했습니다

서울시향을 사퇴한 마에스트로 정명훈 대신 크리스토퍼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 1940 –   , 폴란드 브로츨라프 출생) 가 지휘한다기에 일부러 서울에 올라가서 연주회를 봤습니다.  에센바흐에 대해서는 오래 전 가족신문에 ‘간략한 자서전’을 올렸습니다. 가족신문에 있는 검색창에 ‘에센바흐’를 치면 그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말에 그라모폰에서 나온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은 이미 명반으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CD로도 발매되었는데, 아마 요즘도 구입이 가능할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기막히게 좋은 명반입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오래 전  정해졌습니다. 지휘자만 바뀐 것인데,  최예은(1988 –    )이 협연하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과 안톤 브르크너의 교향곡 9번입니다.

사 진 1 :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 매표소(1)

전주에서 오후 2시 5분 출발하는 고속버스 탔습니다. 강남터미널에 5시도착,  전철을 타고 광화문에 가니 6시도 안 되었습니다. ‘가봉루’라는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세종문화회관에 갔습니다. 공연은 7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저는 7시도 되기 전에 도착한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왜 집이 제일 먼 사람이 제일 먼저 등교하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된 셈입니다. 여유있게 비치된 팜프렛 구경도 하면서,  티켓박스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했던 표를 좌석표로 교환 받았습니다.

사 진 2 : 세종문화회관 대공연장 매표소(2)

공연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습니다. 밀린 관객들의 표를 교환해 주기 위해서 공연 시작 시간을 7분 가량 늦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2층 좌석(E 109)을 예매했는데, 무대에서 너무 멀고,  머리위에는 3층 객석이 덮어져 있어서 갑갑했습니다. 기대했던 바이올린 소리는 아득하게 들렸고, 브르크너 9번은 그런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 진 3 : 크리스토퍼 에센바흐(팜프렛 사진 복사)

에센바흐는 지휘를 암보로 했습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연주 시간이 60분이 넘는 브르크너 9번까지 암보로 지휘한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지휘자들은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쓸데없이 과잉제스춰를 씁니다. 옛날 영화 화면과 음향이 서로 안 맞듯이, 토키가 안 맞는다고 그러지요, 악단의 음향과 지휘하는 몸놀림이 맞지를 않습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그런 점에서 거의 표준적이고 모범적인 지휘를 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에센바흐는 절제된 몸놀림으로 표정이 풍부한 지휘를 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카를로스 크라이버가 너무 야들야들하고 감성적으로 지휘했다면, 에센바흐는 매우 이성적인 동작으로 원하는 강렬한 음향을 이끌어 냈습니다.  에센바흐는 한국에 7일 도착해서 그 날 밤 10시까지 리허설을 하고, 8일 온 종일, 연주회가 있는 9일 낮에도 내내 시향과 리허설을 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비행기 타고 와서, 소위 ‘히트 앤 런’식으로, 지휘만 하고 획 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 진 4 :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팜프렛 사진 복사)

서울시향 악장이 누구인가 궁금했습니다. 언뜻 멀리에서 보기에 얼굴이 동양 사람이어서, 필라델피아의 악장 ‘데이비드 김’을 에센바흐가 데리고 온 줄 알았습니다. 그건 아니었고, 서울시향 부악장 ‘웨인 린’이라고 합니다. 현재 서울시향 부악장은 ‘웨인 린’과 ‘신아라’ 랍니다. 최예은의 인터뷰를 보니, 신아라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함께 ‘신세 타령’을 했었답니다. 최예은은 앵콜로 윤이상의 ‘작은 새’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사 진 5 :  브르크너 9번 연주 직전의 서울시향 모습

제가 앉은 좌석이 무대에서 멀고, 안내하는 직원들 눈을 피해서, 연주를 시작하기 전이나 후에, 그것도 스마트폰으로 찍으려니, 에센바흐의 표정을 사진으로 선명하게,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주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매번 생각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집안 제사에 참석하고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그 것입니다. 음악 소리는 잘 안 들렸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열열하게 박수를 쳤다는 것은 ‘음악의 신에 대한 어떤 제사’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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