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가 그렇게 일찍 피는 줄 몰랐습니다. 며칠 날씨가 따뜻하다 했더니 어느 결에 피어서 노랗게 웃고 있습니다. 동지 지나면서부터 언제 날이 풀릴까 싶었지만, 올 해도 봄은 갑자기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선화나 히아신스도 싹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매화 꽃봉오리도 금방 터질 듯 부풀었습니다. 이럴 땐 호암 문일평(1888–1939) 선생의 ‘화하만필(1938)’을 읽어보면 좋습니다. 오래 된 책이지만 꽃에 대한 이야기와 동양화에 곁들이는 화제(畵題)들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호암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입니다. 일본 유학을 세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나이가 들어서도 학구열이 식지 않았던, 지조 높은 사학자였습니다.
선운사에는 1971년 겨울에 있었습니다. 도솔암에서 하숙을 하면서 ‘마이암프톨’이라는 폐결핵 치료약을 먹었습니다. 겨울이면 고창 해리 무장 쪽에 눈이 많이 내립니다. 산길이 며칠씩 끊깁니다. 길이 뚫리면 산을 넘어 해리로 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암자에는 시험 준비하는 하숙생이 너 댓 명 있었고, 심부름하는 꼬마와 어떤 나이든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꼬마가 놓은 올무에 토끼가 걸렸습니다. 살쾡이가 몸통은 다 뜯어 먹었는데 남은 부분으로 무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솔암 위쪽으로 올라가면 내원암이라는 조그만 건물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에 의하면, 압력밥솥에 찌는 것처럼 기가 팍팍 올라와서, 내원암이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제일 잘 서는 곳’이라고 합니다.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집 ‘동천’은 1968년 나왔습니다. ‘동천’은 1973년 군산여자고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고 사 봤습니다. 시집 ‘동천’에는 ‘동천’이라는 시가 맨 먼저 나와 있습니다. 5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입니다. 그저 그런 시 같았습니다. ‘질마재 신화’는 1975년에 나왔습니다. ‘질마재 신화’는 책이 나오자마자 샀습니다. 놀라운 시집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군산여고에는 개성송도중학교를 나오신 국어과 김주우 선생님이 계셨고, 나중에 초대 전북과학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최병선 선생님이 연구주임으로 계셨습니다. 제가 문교부지정 수학과 연구학교 담당교사를 맡아서 애를 쓴다면서, 거의 날마다, ‘경화춘’이라는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사주셨습니다.
김주우 선생님께서 미당의 ‘화사집’ 초판본이 몇 권 발간된 줄 아느냐 시며, ‘백 권뿐’이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화사집’을 학교로 가져 오셨습니다. 속표지를 넘기니 검은 뱀이 빨간 사과를 문 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질마재는 미당의 고향 고개이름입니다. 선운사 근처의 얘기입니다. 김주우 최병선 선생님과는 함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부여 무량사, 공주 마곡사 등등 생각나는 곳이 많습니다. 어느 해 학기말 방학을 이용하여, 고창 선운사에도 가봤습니다. 역시,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를 않았습니다.” 미당 선생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 구절에 나오는 그대로였습니다. 선운사 동백이 제대로 피었을 때 찾아가보기는 어렵습니다.
‘선운사 동구’라는 시가 새겨진 미당의 시비는 1974년에 세워졌습니다. 고창 라이언스 클럽이 주관해서 설립했다고 합니다. 말이 많았습니다. 미당이 친일을 했다느니, 하고많은 시 가운데 하필 그런 시를 골랐느냐는 핀잔들이었습니다. 시비의 시는 미당이 붓으로 직접 썼습니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디다.///단군기원 사천삼백칠년//선운사 동구에서//미당 서정주”
여러 얘기가 나오는 것을 왜 미당인들 못 들었겠습니까. ‘미당’이 아니고, ‘말당’이라고 할 때, 본인은 속이 얼마나 쓰라렸겠습니까. 미당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언뜻 이해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를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미당이 그 시를 썼을 때나 제가 미당의 시비를 찾아갔을 때나 똑 같이 나이가 59살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미당의 시비를 보는 순간 “아, 이것이 미당의 출구 전략이었구나!”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고향에 동백꽃을 보려왔지만, 고향의 동백꽃이 언제 피는지도 모르는 ‘고향과의 불화’가 맨 먼저 보였습니다. 누항에서의 ‘시대와의 불화’도 짐작이 됐습니다. 맨 마지막에 연호를 구태여 ‘단군기원’ 운운한 것을 보면, 미당의 그 컬컬한 음성이 그대로 들리는 듯 했습니다. “어이, 나 미당일세. 내가 좀 뻔뻔스럽기는 하지만, 자네나 나나 같은 단군의 자손 아닌가. 나도 고향을 떠나서 오래 되었고, 일이 잘 안 맞는 때가 많았네. 뒤가 켕기는 일도 없지는 않고, 나도 사실은 찜찜하네. 어쩌겠나, 그리 이해하게.”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관대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일까요.
몇 년 전에 순천 선암사에 그 유명한 ‘선암매’를 보러 갔습니다. 박민평 화백과 군산여고 때 제자인 서신갤러리 박혜경 관장, 평소 가깝게 지내는 옛 온다라 미술관의 김인철 관장과 동행이었습니다. 선운사고 선암사고 어디고 제 철에 꽃 보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또 했었습니다. 선암사 비구니 스님께 여쭈어 봤습니다. “선암매를 보려면 언제 와야 돼요?” 스님은 얼굴을 붉히며 한참을 망설이셨습니다. “저희도 몰라요. 날이 좋으면 좀 빨리 피고, 어떤 때는 늦게 피고. 그러니까 미리 전화를 해 보시고 오세요.”
제가 어떻게 하다가 동백꽃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홑 동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심습니다. 웬만해선 동백이 해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동해를 입습니다. 흰 동백은 추위에 더 약합니다. 꽃은 그렇더라도 잎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도 좋습니다. 선운사에 가서 보고 오는 것은, 꽃이 있으면 말 할 것도 없지만, 어느 철이든 산 아래 가득 햇빛에 반짝이는 잎입니다. 장항이나 군산에 가보면 가로수로 홑 동백을 심었습니다. 의외로 동백이 싱싱하고 꽃이 좋습니다. 선운사 동백, 언제 꽃이 피는지, 전화해보시고 다녀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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