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란의 계절입니다. 조금 있으면 오월, 작약과 장미의 계절이 됩니다. 올 봄도 어느새 흐드러지게 무르익었고, 이제 서서히 저물어갈 것입니다. 아깝습니다. 어느 산기슭이나 등성이를 바라봐도 금방 채색한 수채화처럼 물감이 습기를 머금고 배어나올 듯합니다. 섬세하기는 한 올 한 올 일일이 수를 놓은 듯합니다. 나이든 사람에게도 해마다 이렇게 똑 같이 신록이 돋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리고, 시로 쓰고, 음악으로 작곡을 해 놨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감각이 무디고 말이 어눌한 우리 보통 사람들로서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들 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 놨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그런 것들을 가까이 두고 감탄하고 예찬하면서 즐겨야합니다. 그것들은 끝임 없는,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한 기쁨을 주는, 보물창고들입니다.
김소월 시집은 어느 시골집에 뒹굴어 다니기도 합니다. 어느 누이가 산 것인지, 무슨 선물로 받은 것인지, 반가운 일입니다. 이발소에도 시와 그림이 있었습니다. 생각이 납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또 있었습니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슬프고 어려웠던 일이 많았던 세상,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다만,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한 몫은 톡톡히 했습니다. 국어책에 나오는 시나 수필, 짤막한 단편소설도 그렇게 재미있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읽어보면 그 맛이 그대로 날까요. 월간 잡지를 사면 맨 뒤쪽에 두 세 편의 시가 다른 글 가운데 끼어 있었습니다. 그 몇 편의 시를 읽는 맛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박재삼 시인은 바둑을 좋아하고, 담배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병인지 항상 달고 살았습니다. 그것을 고목나무에 연이 매달린 것으로 표현한 시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야 그 시를 겨우 찾았는데, 제목이 ‘고목에 연 우는 소리’였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전음악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라디오도 기독교 방송에서 밤 열 시에 보내줬던 ‘명곡을 찾아서’가 거의 유일한 고전음악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작할 때 나오는 시그널 뮤직이 하이든의 ‘시계’ 교향곡 2악장이었는데,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얼마 지나서, 1970년 대 초쯤에, 지방에도 고전음악 전문 다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커피 값이 꽤 비싸기는 했지만 시간이 나면 자주 들렸었습니다. 언감생심, 감히 오디오는 장만하기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군산여자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고 일 년쯤 지나서야 오디오라는 것을 구입했습니다. 진공관과 트랜지스터를 조합한, 즉 ‘히이브릿드’였는데, 기술자가 조립한 것입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몇 분 그즈음 전축을 구입하셨습니다. 카세트테이프에 좋아하는 곡들을 녹음하여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고전음악은 우리가 좋아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보답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뜻이 맞는 친구들이 따로 있어서, 얘기를 하다보면 서로 공감을 합니다. 고전음악이 바로 그렇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해주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어려운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음악은 흐르게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내가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는 지휘자라면 몰라도, 나의 마음과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각각 별 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이기려하지 말고 요모조모로 가볍게 관찰만 하고 무엇을 요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들이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는지도 살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음반을 바로크시대부터 현대음악까지 다 갖출 수는 없습니다. 요즈음은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메모를 해뒀다가 몇 장씩 구입하면 좋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음반 산업은 예전에 비하면 거의 몰락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떨이 음반’들이 수두룩합니다. 모차르트전집, 베토벤 전집 등등, 전집류의 파격적으로 싸게 파는 음반들이 많습니다. 해설서가 거의 없고, 포장이 허름해서 그렇지 음질은 괜찮습니다. 봄이면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가곡 ‘아델라이데’가 적어도 열 번은 나옵니다.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이라고 하지만, 일당 백, 베토벤의 가곡 ‘아델라이데’ 한 곡이 슈베르트의 가곡 100곡에 필적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모짜르트 전집’도 값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징명하다.’라는 표현들을 씁니다. 피아노 소나타도 좋고 바이올린 소나타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이든 베토벤 드볼작의 현악4중주들도 시간을 두고 즐길만 합니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들도 좋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아간 아가씨’는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만 15종류가 넘을 것입니다. 그만큼 좋다는 뜻입니다. 특히 피셔–디스카우가 부르고 에센바흐가 피아노 반주를 한 DVD는 명반입니다. 두 노인네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피렌체 출신 영화감독 프랑코 제피넬리는 많은 오페라들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제피넬 리가 만든 베르디의 ‘춘희(라 트라비아타)’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작중의 명작입니다. 한국가곡도 절창들이 많습니다. 황등 출신 박노경이 부른 채동선 작곡 ‘망향’은 그 가운데 ‘백미’입니다. 오현명 안형일 그리고 우리 고장 전주 출신 송광선도 빼어난 성악가들입니다. 전북사대부고에 계셨던 고 이정태 선생님의 칠순 음악회에서 송광선이 부른 ‘아리랑 변주곡’은 압권이었습니다. 김효근의 ‘눈’도 송광선 음반이 제일 좋습니다. 아, 테너 박인수, 또 김남두, 고성현, 모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어찌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음악이 몇 배로 되돌려 보답해 드릴 것입니다.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