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고들 합니다. 얼마 있으면, 곧 춥다고들 할 것입니다. 여름에 수박이나 참외를 먹다보면, 맨발에 고무신 신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맨몸에, ‘개성베’라고, 무명으로 짠 옷감으로 만든 팬티만 걸쳤습니다. 참외는 껍질을 이빨로 벗겨가며 먹습니다. 참외씨 수박씨는 때 구정물을 타고 까맣게 탄 배꼽 근처까지 자국을 남기며 미끄러져 내립니다. 누구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저희 또래 꼬마아이는 거의 그랬습니다. 참외는, 작고 노란 신품종 ‘나이롱’ 참외가 나올 때까지, 별 맛이 없었습니다. 푸른 줄무늬가 있는 개구리참외는, 잘 익었다고 해도, 겉 부분은 별로 맛이 없고, 노랗게 익은 씨앗과 국물이 있는 안쪽이 달콤했습니다. 개똥참외도 생각이 납니다. 논두렁이나 풀밭에 어쩌다 개의 배설물에 섞인 참외씨앗이 발아한 것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한 살림을 잘 차린, 개똥참외 한 무더기를 발견하면 ‘횡재’였습니다.
호랑이 콩이 그렇게 비싸고 맛있는 줄은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강낭콩과 모양은 비슷한데,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쌉니다. 밥에 넣으면, 식감이, 강낭콩은 딱딱하고, 호랑이 콩은 폭신폭신합니다. 강낭콩은 키가 작고, 호랑이 콩은 넝쿨이 집니다. 우리가 연꽃을 칭찬할 때 ‘부지불만(不枝不蔓)’이라고 합니다. ‘가지가 없고 넝쿨지지도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맑고 청렴하다는 얘깁니다. 콩은 그렇지 않습니다. 넝쿨져야, 차지고, 맛있습니다. 채소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수풀’이라고, 아십니까?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이고, 구약성서에도 나온다는데, 오래된 향신료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름부터가 ‘향채(香菜)’라고 한답니다. 고수는 실뿌리가 아주 많습니다. 고수풀을 보면서 ‘저렇게 잔뿌리가 많기 때문에 향기가 좋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넝쿨도 지고 잔뿌리도 많아야, 햇빛도 많이 받고 영양도 잘 흡수해서, 맛이 좋은 것 같습니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과는 다르다.’라는 뜻이랍니다. 옛날에 그릇이란 용도에 따라 모양이 달랐습니다. ‘술잔은 술잔, 밥그릇은 밥그릇’으로만 쓰인 것입니다. 공자님께서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릇으로 말하면 막사발이 좋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막사발은 밥그릇도 되고, 국그릇도 됩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조선의 막사발은 일본에서 국보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영주들이 사무라이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썼다고 합니다. 막사발이 일본에서는, 최고급 찻잔으로도 쓰인 답니다. 모름지기 우리도 그런 막사발처럼 두루 쓸모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연꽃과 같은 사람은 귀하지만, 호랑이 콩이나 고수풀 같은 사람도 좋습니다. 공자님 말씀은 ‘군자는 막사발 같은 사람이니라.’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요즘 시절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별 짓들을 다 한 것이 들통 나고 있습니다. 최첨단 스마트 폰의 성능을 알았을까요. 녹음되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니, 도대체 무슨 수작입니까. 어쩌면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습니까.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창피합니다. 사람이 능력을 넘치게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를 필요로 하는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라고 국회의원도 시켜주고 대통령이라고 뽑은 것 아닙니까. 가관은, 자기가 1%에 든 줄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고, 우리나라 교육을 기획했다는 것 아닙니까. 소금을 샀는데 설탕이 들었고, 설탕을 쳤는데 소금 맛이 난다면, 이것이 무슨 재변입니까.
가정교육이 문제입니다. 우리 아들딸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맙시다. 우리가 맘먹은 그대로는 가르칠 수가 없지만, 반듯하게 살도록 지켜는 봐야 합니다. 하는 짓마다 천박하고, 부모님으로 부터 배운 것이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는 듣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모자라는데도 그럴듯하게 거짓 포장하여 능력을 속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짓이 거짓을 낳다가, 결국은 허구인지 진실인지 조차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한마디로, 무서운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본부터 제대로 가르칩시다. 앞으로, ‘믿어 달라’고, ‘행복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어 달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따위의 얘기를 하겠습니까. 어떤 부류는 건듯하면 ‘낮은 자세로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얘깁니까. 자기는 높은 곳에 있다는 뜻 아닙니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치졸한 수작입니다.
우리는 오붓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 속에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라는 생각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선생과 제자, 남편과 아내, 어느 쪽이 위이고 아래입니까. 그것이 ‘상–하’의 관계입니까? 각각의 역할이 있는 인격체들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옛날부터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부모는 어떤 시절인연이 있어서 귀한 자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낳고 키우는 자식이지만, 부모라고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저마다 고귀함을 갖고 태어난 ‘영물’들 아닙니까. ‘부자지간’ 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사제지간’입니다. 남의 귀한 자식에게 어떻게 함부로 합니까. 부모도 아닌데 어떻게 응석을 부립니까.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붓하게 잘 살려면 서로를 끝없이 배려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집에서는 밥에 콩과 보리를 약간씩 넣어 먹고 있습니다. 요즘 제 입맛이 보리를 더 넣고 싶어서 따로 밥을 짓습니다. 쌀 2인분에, 검은콩 조금, 찰 보리 1인분을 넣습니다. 밥이 꽁보리밥 같이 까맣습니다. 나이가 드니 어떤 진수성찬이라도 국물이 없으면 짜증이 납니다. 여름에는 국 대신 오이 냉채라도 있어야 합니다. 호박잎에 곁 드려서 강된장을 찌고, 꼴뚜기 젓갈에 식초와 청양고추를 넣고 무치면 매콤하고 짭짤합니다. 사람이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했습니다. 텃밭에서 가꾼 푸성귀에 붕어찌게라도 올라오면, 저도 명색이 가장이라고 제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 생깁니다. ‘우리 집에도 안사람이 직접 찹쌀로 빚은 약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절이라고, 언감생심,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꼬박꼬박 오이냉채라도 어딥니까. 그것만 해도 제게는 과분하기 짝이 없는 복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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