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높새가 불면 당홍연도 날으리

새해가 밝았습니다. 광막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한 점 행성이 태양의 둘레 어느 곳을 지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당분간 추울 것입니다. “범이 불알은 동지에 얼구고 입춘에 녹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체의 운행을 제대로 짚어서 한 얘기입니다. ‘호단토장(虎短兎長)’이라는 말도 천문얘기입니다. 동지가 지나면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진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호랑이는 인시(寅時), 3시부터 5시까지이고, 토끼는 묘시(卯時), 5시부터 7시까지입니다. 해 뜨는 시각이 7시 쪽에서 새벽 3시 쪽으로 빨라지니, “호랑이 꼬리는 짧아지고, 토끼 꼬리는 길어진다.”고 한 것입니다. 옛 사람들이 놀던 일종의 문자유희입니다. 천체의 운행에 관한 천문학적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갖고 놀았습니다.

 

우리가 같은 달력을 보고 산다고 해서 모두 동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을 했습니까. 누가 그런 기막힌 표현을 했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진중권(1963년생) 선생뿐일 것 입니다. 어느 책에선가 진 선생 가족의 어릴 때의 가족사진을 봤습니다. 한참 시골인데(지금의 강서구 공항동), 회숙은숙중권중걸, 네 형제자매가 옹망졸망 했습니다. 부친은 목사이시고, 모친은 피아노 선생님이셨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모름지기 시골에서 키워야합니다. 개구리도 잡고 메뚜기도 잡고, 팬티에 메리야스만 입혀서 마음껏 뛰어놀도록 놔둬야합니다. 그런 사람은 커서도 평생을 놀면서 살 것입니다. 공부도 평생 놀면서 하고, 돈도 평생 놀면서 잘 벌 것입니다.

 

사람이 한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대개 그런 분들은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이해하려고 하고, 나아가, 인류, 생명체,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평생 동안 애정을 쏟아 붇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꼬박꼬박 착실하게 삽니다. 사진이 초점이 맞고, 흔들리지 않고, 선명하게 나왔다고 좋은 작품이 아닙니다. 흔들렸건, 흐릿했건, 어두웠건,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찍혔느냐입니다. 무엇을 찍으려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밖에 못 찍었다면 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언제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전주 동문거리에 구릿골서점이 있었습니다. 책 표지가 뜯긴 영어책이 있었는데,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가 사서삼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젊은 책방주인이 책 상태가 안 좋아 미안하다며 제게 거의 공짜로 주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비교적 온전한 책을 구했다며, 다시 한 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레게는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로 중국에서 33년을 보내며 중국의 고전을 40여권 번역했습니다. 한문은 토씨가 불확실해서, 토씨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한문을 아는 분이 곳곳에 토를 달아주면 읽기가 좋습니다. 그것을 현토라고 합니다. 특히 시경은 영어로 어떻게 번역을 하겠습니까. 실제로 여러 가지 다른 영역본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레게의 번역이 명 번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게는 스코틀랜드의 헌트리(Huntly)’라는 시골마을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3살 때 생모가 죽고 새엄마가 키웠는데, 9살이 되도록 새엄마를 생모로 알았답니다. 그 만큼 새엄마가 훌륭했다는 얘기겠지요. 레게는, 갓난아기였지만, 생모가 키웠던 때가 기억된다고 했습니다. 생모는 아이를 일곱 낳았는데, 위로 셋은 죽고, 제임스가 막내였답니다. 병약한 엄마는 물레로 린넨 천을 짜면서 성경의 시편을 종이쪽지에  적어서 걸어놓고 가락을 붙여서 외웠답니다. 그 가락은 1650년 스코틀랜드에서, 8-6-8-6조로, 각운을 붙인 것입니다. 레게가 나중에 시경을 번역할 때, 그런 식으로 각운을 맞춰서 하려다가 어려워서 포기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레게를 생각하면 사람이란 얼마나 신령스러운 존재인지 놀라게 됩니다.

 

레게는 60세 다 되어 영국으로 돌아와서 옥스퍼드대학에 중국어과를 만들고 20년 넘게 제자들을 가르치며 중국고전 번역을 계속했답니다. 그 당시 옥스퍼드대학에 막스 뮐러(Max Muller, 1823-1900)이라는 독일 출신 학자가 있었는데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 협업관계였답니다. 뮐러는 저명한 인도 산스크리트어학자였습니다. 1960년대 한국 대학생들에게 필독서가 몇 권 있었습니다. 일본사람이 쓴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과,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첫 사랑도 그것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막스 뮐러의 아버지가 바로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1794-1827), 슈베르트의 연가곡들 겨울 나그네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시를 쓴 장본인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영물스러운 존재들입니다.

 

이한직(경기도,1921-1970)19세 때 문장지에 정지용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청록집(1946)’은 우연히 을유문화사에 들렀던 조풍연(?)의 제안으로 문장지 추천을 받은 조지훈박목월박두진이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한직은 학병으로 만주에 있어서 참여를 못했답니다.

높새가 불면/당홍연도 날으리//향수는 가슴 깊이 품고//참대를 꺾어/지팡이 짚고//짚풀을 삼아/짚세기 신고//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슬프고 고요한/길손이 되오리//높새가 불면/황나비도 날으리//생활도 갈등도/그리고 산술도/다 잊어버리고//백화를 깎아/묘표를 삼고//동원에 피어오르는/한 떨기 아름다운/백합꽃 되오리//높새가 불면… (이한직높새가 불면전문,1940)

높새은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관서지방에 부는 북동풍이랍니다. 얼추, 금년 봄 대선 때 쯤이 되지 않을까요?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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