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표 한 장은 취소 시켜.’
4시 10분에 상영하는 ‘레미레제라블’을 예약했는데 늦게 된 것이다. 점심 식사후에 딸아이와 집사람은 백화점에 구경가고, 나는 집에 들렸었다. 정원에 연못물이 서서이 빠져서 3일에 한 번꼴은 보충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3시 30분쯤 집을 나서니 마을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혹한에 빙판이져 동네 사람들 차끼리 부딪친 것이다. 길을 우회해서 백화점 가까이에 갔을 때는 3시 53분. 주차시간까지 감안하면 우선 표부터 취소를 시켜야 했다. 주차는 운 좋게 조금 빨리 했지만, 매표원과 마주한 것은 4시 20분이다.
‘아무 프로나 가장 빠른 영화가 무엇입니까?’
‘빠른 영화가 5시 넘어서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방금 시작한 ‘레미제라블’을 앞 부분은 못 보시더래도 보시겠습니까?’
‘자리가 문젠데요, 앞자리 말고는 없습니까.’
‘맨 뒷자리 중앙에 한 자리가 비었습니다.’
‘좋습니다. 그 자리 주십시요.’
극장에 들어가니 본영화가 상영되기 직전이었다. 맨 뒤쪽 좌석으로 갔다. 이내 본영화가 시작되었고,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어둠속에 더듬더듬 자리를 잡았다. 그때 옆자리에서 나즉한 소리가 들렸다.
‘잘 왔어. 참 잘 왔어’
집사람이었다. 취소했던 그 자리에 내가 다시 앉게 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영화관을 둘러보니 앞자리까지 좌석이 꽉 찼다. 그러니까 상영 직전에 취소한 내 자리만 비었던 셈이다.
영화 ‘레 미저러블’는 잘도 만들었지만, 엄동설한에 극장이 꽉 찬 것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고, 이야기를 빠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서울은 더 춥다는데, 서울사람들도 ‘레미제라블’을 이렇게 많이 볼까. 물론 서울 사람들도 이야기를 좋아하겠지.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뽑을 때는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옛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는데, 무슨 까닭이지? 그래저래, 영화 제목 한 번 딱이다.
‘레 미저라블!’
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