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부역자들의 역습

                          

무슨 영화였던가,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어느 쪽이 우리 편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영화 같으면, 귀가 어두어도, 자막을 읽으면 됐을 텐데, 오히려 우리 국산영화는, 대사가 잘 안 들려서, 영화의 스토리 돌아가는 것을 제가 따라가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인랑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언젠가 오래 전에, 아들과 딸도 함께, 온 가족이 영화를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가 무언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집사람은 웃기만 하고, 아들과 딸이 이구동성으로 핀잔을 줬습니다. “아빠는 영화비가 아깝다.”는 딸의 말에, 화를 낼 수도 없고, 약간은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토리를 그렇게 건너뛰어서 만들면 어떻게 해!”라며, 속으로 억울하고 분한 생각을 삭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살다보면, 남의 얘기를 듣거나 잘못 된 정보로, 어떤 사실들을 잘못 이해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엊그제 안의 골짜기에 다녀왔습니다. 집사람이 방학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외국여행을 다녀온다는데, 나는 뭐야.”하며 불만이 많습니다. ‘육십령터널을 지나면서 집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육십령이 왜 육십령이라고 하지?” “들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어요.” “, 옛날에 산적이 많아서, 육십 명 쯤 모여야 함께 고개를 넘어 갔었데.”라고 다시 설명을 해 줬습니다. ‘거연정에 들리니 그렇게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주대학교 국어과에 계셨던 전일환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교수님 고향에 왔습니다. 참으로 좋은 곳이네요.” “,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거연정에서 잠을 자려면 홑이불이라도 덮어야 합니다.” 집사람과 정자 난간에 기대어 앉으니, 갑자기 신선이 된 듯 착각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편액들을 살펴보니, 제 짧은 한문 실력으로, 사람 이름 빼고는, 몇 글자밖에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낯이 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송병준입니다. 형제인 듯한데, ‘송병순편액도 나란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거연정앞 바위에는 이름도 제법 크게 새겨 놨습니다. 시의 내용을 집사람에게 아는 척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무지 마음이 불편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일파 송병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안의에서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고, ‘농월정에 들려,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기도 하고, 집사람은 언니와 동생도 함께 언제 내려오라고 해야겠다.”며 즐거워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거연정을 그냥 지나쳤더니, 집사람이 “‘거연정에서 한숨 자고 가자.”고 했습니다. ‘송병준때문에 찜찜하기는 했지만, 차를 유턴하여 돌아갔습니다. 마루에 자리를 깔고 나란히 눕더니, 집사람은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잠결에 제가 잠에 못 든 것을 보고, “, 안 자요?”하고 물었습니다. “너무 조건이 좋으니 잠이 안 오네.” 그랬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습니다. ‘송병준을 치니, 친일파 내력이 조목조목, 아들과 손자까지, 줄줄이 나옵니다. ‘거연정에서 본 송병준은 한문으로, ‘宋秉濬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도배 된 송병준은 한문으로, ‘宋秉畯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동명이인이었던 것입니다. ‘송병준(宋秉濬 1836 – 1905)’은 강제 한일합방에 자결한 애국지사이고, ‘송병준(宋秉畯 1857 – 1925)’은 대를 거치며 친일을 했던 매국노였습니다. 제가 확인을 안 해봤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어느 자리에서든 반드시 전일환 교수님께 언짢은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모르고 잘못 가르친 사람도 있고, 알고도 일부러 왜곡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김성일과 유성룡이 일본을 다녀와서 서로 다르게 보고 했다.” 그것은 친일파였던 춘원 이광수의 대표적인 왜곡이랍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가 찹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수들의 역습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부역자들의 역습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홍길동의 심정을 우리 국민들은 답답해 할 뿐입니다. 누구는 내란 음모라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비상시 대비라고 주장합니다. 훤하게 보이는 것을 왜곡하는 것은, 그 사람들 자신이 연루가 됐거나 공범들이기 때문입니다. ‘쿠데타 음모방위사업청 비리등은, 법률 이전에, 국민들의 법 감정에 따른다면, 두 말 할 것도 없이 극형에 처 해져야 마땅합니다. 헬리콥터가 시험비행 중 떨어지니, “얼마 전 청와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헬기라고 했다.”고 합니다. 수 십 년에 걸친 국방비리의 결과를 현 정부에 책임을 돌리려는 수작입니다. 무더위에 전기 수요가 급증하니 원자력 발전까지도 더 필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것이 탈원전 정책의 실패입니까?

 

혼란의 시대입니다. 정치와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바로 잡기는커녕, 오히려 한 술을 더 뜨고 있습니다. 언론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언론들은 정말 가관들입니다. 제대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파악하기 힘든 스토리를 왜곡하니, 꼭꼭 숨어있는 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국민연금기금이 갖고 있는 기업들의 주식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서, ‘권리행사를 하겠다.’는 것도 비난이 빗발칩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같은 재벌의 행태를 견제하겠다는 것이 그렇게 잘못 된 얘기입니까?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곧 문명사회 아닙니까. 우리가 그 동안 독재정권의 부역자들에게 속아 넘어간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뿐이었습니까. 그런 엉터리 같은 수작들은, 저들에게는 언제나 그렇게 해 왔던 삶의 한 방식이겠지만, 우리들에게는 치욕스런 상처를 건드리는 고루한 수법들일 뿐입니다.

 

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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