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11. 실솔이든 촉직이든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오래다. 예전에 호젓한 가을밤 문지방에서 혹은 마루 밑에서 울어대던 귀뚜라미 소리는 잠이 안 오는 밤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했다. 그러나 요즘은 주거환경이 많이 바뀐 탓에 귀뚜라미 소리를 잊고 산다.

귀뚜라미는 실솔(蟋蟀)이라는 이름으로 시나 문장에 자주 등장한다. 옛사람들도 귀뚜라미 소리에 서럽고,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실으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안민영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한 조선후기 가객 박효관의 시조는 절창이다.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지만 그 때의 마음이나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나 매 한가지인 모양이다. 사랑을 하더라도 이 정도는 솔직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님 그리다 죽으면 귀뚜라미라도 되어 기나긴 가을 밤 님의 방에 들어가 못다 한 사랑노래를 부르겠다는 구구절절 사랑 고백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최성대는 ‘실솔’이란 한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밝은 달빛 풀섶 이슬에 걸려 반짝이는데(皎月草間懸露光)/ 옥구슬 단장하고 무슨 말이 그리 많아(纖珠碎佩語何長)/ 가을바람 소슬 불어 시름만 더하거늘(秋風吹起深深思)/ 뾰족하게 벼린 칼로 애간장을 찌르듯(似淬尖鋩割盡腸)’.

가을 정서를 자극하는 귀뚜리 울음소리는 안 그래도 쓸쓸한 밤, 잠을 못 이루게 한다. 이런 심사를 잘 읊은 시가 있다.

‘나이 오십/ 잠이 맑은 밤이 길어진다/ 머리맡에 울던 귀뚜라미도/ 자취를 감추고/ 네 방구석이 막막하다/ 이런 밤에/ 인생은/ 날무처럼 밑둥에 바람이 들고/ 무릎이 춥다/ 지천명의/ 뜰에는 백국(白菊)/ 서릿발이 향기롭다'(박목월 ‘백국’).

그렇다고 귀뚜라미가 매양 시름과 벗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조실록에서 정조는 “대궐 안 풀에서 우는 귀뚜라미의 맑은 소리를 들으니 더욱 더 높은 풍모를 그리게 된다”며 조림(曺霖)의 출사를 간곡히 청한다.

대개 귀뚜라미 소리는 선비의 맑고 높은 뜻을 일깨운다.

시경의 당풍(唐風)편 실솔(蟋蟀)에서는 귀뚜라미를 동원해 훌륭한 선비(良士)상을 세운다.

“실솔이 방에서 우니 이해도 벌써 저무는구나(蟋蟀在堂 歲聿其莫)”라며 “훌륭한 선비는 늘 조심하고(良士瞿瞿), 늘 부지런하며(良士蹶蹶) 늘 분발한다(良士休休)”고 했다.

귀뚜라미는 촉직(促織)이라고도 부른다. 촉직은 ‘날이 추워지니 빨리 베를 짜라고 재촉하여 우는 벌레’라는 뜻이다.

조선 인문학자 정학유의 시명다식(詩名多識)에는 귀뚜라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다른 이름으로는 공(蛩), 청렬(蜻蛚), 초(楚)나라 사람들은 왕손(王孫)이라고 한다. 유주(幽州)사람들은 촉직(趣織)이라하니 빨리 하도록 재촉한다는 뜻이다. 속담에 ‘촉직(趨織)이 우니 게으른 며느리가 놀란다’고 했는데 이것이다.”

왜 왕손이라고 했는지는 잘 짐작이 안 되지만 게으른 며느리가 놀란다는 표현은 퍽이나 흥미있다.

두보의 시 촉직(促織)은 또 얼마나 애달픈가.

“조그맣고 가냘픈 귀뚜라미(促織甚微細) 슬픈 소리 이렇듯 사람을 울리는고 (哀音何動人) 풀섶에서 오들오들 울고 있더니 (草根吟不穩) 침상 밑에서 정답게 속삭이는듯 (狀下意相親) 오랜 나그네 눈물 없인 못 들으리 (久客得無淚) 버림받은 아낙 새벽까지 지탱치 못하리라 (故妻難及晨) 서글픈 거문고와 격앙된 피리소리도(悲絲與急管) 너의 천진한 감격에는 비기지 못하리 (感激異天眞)“

귀뚜라미 같은 평범한 소재를 택했건만, 정서도 있고 인간사 사연곡절을 담고 있어서 외면하기 어려운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자기가 비애의 구렁에 빠져 있어서인지 인간 두보는 마치 사람을 대하는 듯 이 미물마저도 따스한 애정으로 감싸고 있다.

어린이들 교재로 흔히 동원되는 추구(推句)에도 귀뚜라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귀뚜라미는 골방에서 울고 있고 (蟋蟀鳴洞房) 오동잎은 가을 우물로 떨어진다. (梧桐落金井)’

귀뚜리 울음소리는 사실 울음이 아니다. 날개를 부벼 짝 지을 암컷을 부르거나 영역을 알리기 위한 소리다. 그저 사람들이 이를 울음이라고 부를 따름이다. 어쨌건 그 울음이 듣는 이의 심사에 따라 달리 들려 온갖 감회를 이끌어낸다.

가을이라고 누구나 다 생각이 깊어질 수야 없겠지만, 책 읽기에 좋은 계절임은 분명하다. 거기에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는다면 더 할 나위 없는 정복(淨福)이 될 터이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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